전역, 그리고 새로운 시작.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2년 그리고 군대 2년. 총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는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퇴행도 있었다. 순수함의 상실. 바로 그것이 퇴행 중 하나일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은 아마도 내 인생의 중세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생각들이 정지했던 것은 내가 정확하게 3년 늦게 정신연령이 발달되어 갔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 2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많은 것들을 해보았다. 그 과정에 대한 반성을 앞으로의 나의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의무와 강제 그리고 어쩌면 탈출구로 선택한 군대 2년(도 이제 끝났다). 나의 생각과 육체는 계속되는 변화와 앎을 원했고 군대는 많은 부분을 가로막았다. ... 나는 확실히 2년 전과 다르다. 많은 사상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의욕과 열정 또한 최고에 가깝다. 분명히 군대보다 더 힘든 벽과 싸워야 할 것이고 보다 더 어려운 고통이 따를 것이다. 이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내 꿈을 이루어갈 시간이다. 주님과 함께 어머니와 또한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2000년 4월 12일)
10년 전 나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10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게 서 있는 세상의 벽에 부딪히면서 점점 갈 곳을 잃어갔고, 최고라 자부하던 의욕과 열정은 사그라들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 살겠다던 거창한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나는 조금씩 염세가가 되어 갔다.
10년 전의 나에게 부끄러운 지금의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부디 10년 전의 열정이 되살아나길.
6월 12일 남북정상회담.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다. 통일에 대해서 북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준 강만길 교수와 리영희 교수께 감사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정말 이번 회담이 양국의 모든 인민들의 홀린 눈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국보법도 폐지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협도 이산가족보다도 앞에 있는 문제.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불가침에 양 정상이 조인하고 구체적인 그리고 평등한 통일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00년 4월 12일)
드디어 남북 정상이 합의문을 발표했다. 무지하게 감격스런 날이다. 맘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철조망 내리고 통일이 됐음 좋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대중옵빠가 오랜만에 맘에 들고, 정일옵빠는 정말 떴다. 4천만 아니 7천만 겨레의 눈이 이제 제대로 떠지게 된 것이다. 정일옵빠는 뿔난 도깨비가 아니라는 사실에 모두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발 쎈 옵빠였다! 제발 이번 기회로 좃선일보 등도 정신차리고, 딴나라당 아저씨들도 정신차리고 그랬음 좋겠다. ... 정말 오늘은 기쁜 날이다. 진짜 오랜만에 우리나라가 예뻐보인다. 자랑스럽고, 희망이 용솟음친다. 이제 발해를 꿈꾸던 것이 현실이 될 것인가. 오늘을 기억해야 한다. 국경일로 삼아서 놀아야 한다. 6월 14일! (2000년 6월 14일)
전역을 즈음해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 그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임에 분명했다.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 빨갱이의 총수 김정일을 정상으로 인정하고 회담을 열다니.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긴가민가 했다. 도깨비인줄만 알았던 공산당들이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화면에 잡힌 도깨비는 호탕했다. 공항까지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나왔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조선일보 마저도 김위원장의 이름을 동네 양아치 부르듯 하다가 이 때 만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섬기는 척 했다. 사람들의 피는 뜨거워졌고 들뜨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기념비적인 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 일이었는지를 참담히 지켜보며 눈을 감아야 했고, 그나마 그의 노력을 존중하고 계승한 또 한사람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일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의식은 10년 전의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일 뿐만 이겠는가...)
4월 13일 총선. 난 청년진보당 L을 찍었다. 안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선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걸 아니까. 보다 많은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그들의 기반을 더더욱 다져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좌우가 공존하는 정치권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2000년 4월 12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청년진보당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좌파그룹의 몇몇 당들중 하나였을 거다. 몇 년간의 독서를 통해 정치의식이라는 것을 함양한 나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 세상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00년, 그렇게 나는 멋도 모른채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