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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까. 종교적 회심이라는 것마저도 인간의 이기심의 발로에 불과한 것일까. 결국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한계는 인간이라는 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일까. 등등의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유영하게 하는 영화. 밀양. (적어도 내게는) 그런 화두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보이는 작가로서 이창동식 리얼리즘은 가치가 있다.

2.
전도연이 이 영화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하다는 데는 조금도 이견을 제시하고 싶지 않을 만큼 그녀의 연기는 '황홀'하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송강호다. 단언컨대 그가 없었다면 결코 전도연의 연기는 그만치 빛날 수 없었을 거다. 자신의 배역에서 스스로 얼만큼의 위치를 차지하고, 어느정도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지를 완벽하게 알고 해내는 그의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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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공동경비구역이란 영화를 보면 어느날 밤 울린 미스테리한 한 발의 총성의 진실이 파헤쳐지는 과정을 그린다.
장르적으로 기본적인 미스테리 영화의 공식이란 그런 식이다.
어떤 사건이 있고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실마리들이 천천히 하나씩 드러난다.
영화는 보통 편집이라는 것을 통해 관객에게 그 실마리들을 제공한다.
정보는 참일수도 있고 거짓일수도 있다. 사건의 맥락 속에서 실마리 혹은 정보는 제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대개는 어떤 반전을 시도한다. 그 반전이 충격적임에도 100% 납득할만하다면 그 영화는 수작이 된다.

불안하게도 천안함 침몰 사건은 마치 이런 미스테리 영화를 관람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미디어가 제공하는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편집된 시뮬라크르 영상들의 지속적인 반복 속에서 나의 머리는 퍼즐을 맞추기에 바쁘다.

어떻하면 정보를 차단할 수 있을까를 골몰하는 그들이 원하는 건 영화같은 현실인걸까.
아니면 현실이 영화같길 바라는걸까.

마흔여섯의 실존을 앞에 두고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런 물음을 던지는 것 뿐이라니...

고 한주호 준위의 명복을 빌며, 실종자들의 생존을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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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킨다"

1930년생, 그러니까 올해 80살이 된 이 거장 감독의 영화를 동시대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까 싶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조금도 억지스럽지 않게 진한 감동으로 담아내는 그의 연출력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존경'스럽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의 영화는 늘 '용서'라는 주제의식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근작 <그랜토리노>는 그가 '용서'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을 대표한다. 왜 용서일까. 그가 용서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답이 있다. 넬슨 만델라의 입을 통해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시킨다'고. 진심으로 그가 그렇게 깨닫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만들 수 없었을 거다. 

그리고 용서를 통해 영혼이 해방된 우리는 기어이 'invictus'하고 만다. (라틴어 'invictus'는 영어로 'unconquerable: 정복할 수 없는, 무적의'를 의미한다) 영화의 결말, 남아프리카 공화국 럭비대표팀의 우승은 '삶에서의 승리=타인(그리고 결국 자신)에 대한 용서'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제목이자 영화에서 인용된  William Ernest Henley의 시 'Invictus'는 이렇게 끝맺는다.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 모건프리먼과 맷데이먼은 말할 필요없이 훌륭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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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스릴러 영화다. 완성도 높은 영상과 연기, 연출 모두 나무랄 데가 없고 흥미진진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인간(내면)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에 훌륭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영화적'인 재미에 치중한 나머지 '철학적'인 재미를 놓쳤다. 마틴 스코시즈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모름지기 영화란 재미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즐거운 영화다. 그리고 디카프리오는 참 좋은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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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W's Diary & Today 2010/03/17 01:23

아프다. 이 맘때쯤이면 연례행사로 치뤄줘야 하는 감기. 마침 하릴 없이 푹 쉬고 있는 백수 신세이다 보니 약 먹고 자면 금새 낫겠지 싶으면서도 아픈 몸이 이상하게도 기분 나쁘지 않다.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차분해지는 기분. 우습게도 아프니까, 어쩌니 저쩌니 해도 몸이 건강한게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그래 걱정할 거 뭐 있어. 하는 생각. 아픈만큼 성숙한다더니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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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한 후 처음 맞이 하는 날이다. 뭐랄까 정의하기 힘든, 우울한 것 같으면서도 허무 비슷한 기분 때문에 몹시 안 좋다. ... 여튼 쉽사리 일자리를 구할 것 같지는 않다. 우선은 겉으로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신만만해 하고 잇지만 사실은 두려워 하고 있는 나 때문이다.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 당위는 무엇인가. ... 돈. 돈. 돈. 어딜 가든 어느 때든 뭘 하든 이게 문제다. 돈. 가장 쓸모있는 발명품이 아니라 가장 더럽고 추한, 쓸모 없는 발명품이다. 우린, 우리 인간은 분명 '돈'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2000년 4월 17일)

난 오늘도 부질 없이 유토피아를 꿈꾼다. (2000년 4월 18일)

아이러니컬하게도 근대 자본주의 사회라는 현실 속에서 가장 자본으로부터 격리된 군대에서 갓 제대한 나는 하루도 채 못되어 자본의 벽에 부딪히고 절망한다. 세상은 늘(군에 가기 전에도) 그런 상태였지만, 우습게도 내 머리는 외따로 저 멀리 혼자 유토피아로 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조급하게 유토피아란 부질없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혼란스러워진 몸과 마음을 추스릴 겨를도 없이 난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구해야만 했다.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다. L 백화점. 생각처럼 쉽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일은 아니지만 완벽하게 하고 싶다. 모든 일이 다 내게 그렇듯. 내일 또 무슨 수가 생기겠지. 시행착오 없이 보다 나은 결과는 없으니까. ... 백화점으로 향하는 여자들. 그들은 왜 그렇게 거만한가. 무엇이 그들의 표정을 그리도 거만하게 만들었나. 그들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 그들은 한번이라도 그들과 같은 여자임에도 핍박당하고 고통당하는 이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대들이여 부끄러워하라. 그대들의 부와 그대들의 한량함은 그대들보다 약하고 힘 없는 자들의 희생의 결과이니. (2000년 4월 19일)

군 제대 후 내가 돈을 벌기위해 처음으로 한 일은 L 백화점 각 지점 셔틀버스(지금은 없어졌지만)의 노선을 파악하는 일이었다. 직접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미리 준비한 지도에 정확하게 정류장의 위치를 마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컴퓨터로 웹상의 지도에 다시 한번 정확하게 위치를 표시하는 일. 그러면 그 지도는 온라인의 L 백화점 홈페이지 셔틀버스 노선도라는 메뉴에 올라갈 것이다. 인터넷 발달 초기,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은 급격하게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비록 열흘 정도의 짧은 아르바이트였지만, 난 꽤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화되어 가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노동의 가치와 어려움에 대해서, 그리고 일기에서도 썼듯 백화점의 개장시간을 기다렸다가 11시에 문이 열림과 동시에 매장으로 질주하는 인간들로부터는 자본주의 사회가 조장하는 욕망에 대해서, 나아가 계급에 대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은 온갖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다양한 계급의 인간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물론 주인공은 돈을 매개로 상품으로부터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고 그로부터 존재를 확인받는 소비자들이다. 그들마저도 VVIP로 불리우며 특별한 대우를 받는  최상층의 사람들로부터 그저 윈도우 쇼핑으로 그림의 떡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까지 여러 계층으로 분류된다.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이 있다. 당연히 노동자들도 나뉜다. 하루 종일 CCTV와 관리인들의 감시를 받으며 상품과 함께 웃음을 팔아야 하는 종업원들로부터 화이트칼라의 직원들까지. 그리고 꼭대기에는 보통 경영수업 중인 재벌그룹의 총수의 뭐 아들래미나 딸래미나... 그래서 백화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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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그리고 새로운 시작.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2년 그리고 군대 2년. 총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는 많은 발전이 있었고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퇴행도 있었다. 순수함의 상실. 바로 그것이 퇴행 중 하나일 것이다. 고등학교 3년은 아마도 내 인생의 중세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생각들이 정지했던 것은 내가 정확하게 3년 늦게 정신연령이 발달되어 갔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 2년.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느끼고 또 많은 것들을 해보았다. 그 과정에 대한 반성을 앞으로의 나의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의무와 강제 그리고 어쩌면 탈출구로 선택한 군대 2년(도 이제 끝났다). 나의 생각과 육체는 계속되는 변화와 앎을 원했고 군대는 많은 부분을 가로막았다. ... 나는 확실히 2년 전과 다르다. 많은 사상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의욕과 열정 또한 최고에 가깝다. 분명히 군대보다 더 힘든 벽과 싸워야 할 것이고 보다 더 어려운 고통이 따를 것이다. 이제 천천히 그리고 아주 치밀하고 정교하게 내 꿈을 이루어갈 시간이다. 주님과 함께 어머니와 또한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서. (2000년 4월 12일)

10년 전 나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10년 동안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게 서 있는 세상의 벽에 부딪히면서 점점 갈 곳을 잃어갔고, 최고라 자부하던 의욕과 열정은 사그라들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고통 받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 살겠다던 거창한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나는 조금씩 염세가가 되어 갔다.

10년 전의 나에게 부끄러운 지금의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부디 10년 전의 열정이 되살아나길.

6월 12일 남북정상회담. 정말 역사적인 사건이다. 통일에 대해서 북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준 강만길 교수와 리영희 교수께 감사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정말 이번 회담이 양국의 모든 인민들의 홀린 눈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국보법도 폐지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협도 이산가족보다도 앞에 있는 문제.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불가침에 양 정상이 조인하고 구체적인 그리고 평등한 통일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00년 4월 12일)

드디어 남북 정상이 합의문을 발표했다. 무지하게 감격스런 날이다. 맘같아서는 내일이라도 당장 철조망 내리고 통일이 됐음 좋겠다.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대중옵빠가 오랜만에 맘에 들고, 정일옵빠는 정말 떴다. 4천만 아니 7천만 겨레의 눈이 이제 제대로 떠지게 된 것이다. 정일옵빠는 뿔난 도깨비가 아니라는 사실에 모두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말발 쎈 옵빠였다! 제발 이번 기회로 좃선일보 등도 정신차리고, 딴나라당 아저씨들도 정신차리고 그랬음 좋겠다. ... 정말 오늘은 기쁜 날이다. 진짜 오랜만에 우리나라가 예뻐보인다. 자랑스럽고, 희망이 용솟음친다. 이제 발해를 꿈꾸던 것이 현실이 될 것인가. 오늘을 기억해야 한다. 국경일로 삼아서 놀아야 한다. 6월 14일! (2000년 6월 14일)

전역을 즈음해서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 그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임에 분명했다.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 빨갱이의 총수 김정일을 정상으로 인정하고 회담을 열다니. 사람들은 웅성거렸고, 긴가민가 했다. 도깨비인줄만 알았던 공산당들이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화면에 잡힌 도깨비는 호탕했다. 공항까지 김대중 대통령을 마중나왔고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조선일보 마저도 김위원장의 이름을 동네 양아치 부르듯 하다가 이 때 만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고 섬기는 척 했다. 사람들의 피는 뜨거워졌고 들뜨기 시작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은 분위기.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무엇이 달라졌는가. 그 기념비적인 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 대통령은 그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 일이었는지를 참담히 지켜보며 눈을 감아야 했고, 그나마 그의 노력을 존중하고 계승한 또 한사람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일을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의식은 10년 전의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통일 뿐만 이겠는가...)

4월 13일 총선. 난 청년진보당 L을 찍었다. 안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선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걸 아니까. 보다 많은 지지세력을 확보하여 그들의 기반을 더더욱 다져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좌우가 공존하는 정치권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2000년 4월 12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청년진보당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좌파그룹의 몇몇 당들중 하나였을 거다. 몇 년간의 독서를 통해 정치의식이라는 것을 함양한 나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 세상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옳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2000년, 그렇게 나는 멋도 모른채 사회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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