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국가들을 필요로 하고, 국가간 체제를 필요로 하며, 헤게모니적 패권이 주기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본가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이 구조의 유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이 구조를 번창시키는 것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다. 자본가의 최우선 관심사는 언제나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며, 자본의 축적은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그 안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치적, 문화적 지배의 틀을 끊임없이 변화시킴으로써 가장 잘 성취될 수 있다. 자본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획득하지만 국가의 지배는 교묘하게 피해 나간다.
잠이 오질 않아.
아니 잠은 오는데, 자고는 싶은데.
눈을 감으면 잠이 달아나고 눈이 말똥말똥 해지고 말아.
한 친구는 무의식의 쌓여 있는 때문이라고 해.
무의식은 얼어죽을.
난 의식적으로 커다랗고 곤란한 번뇌에 빠져있는 걸.
번뇌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돌 듯 무한궤도를 그리고 있어.
머리가 잘 수 없으니.
몸도 잘 수 없을 밖에.
패닉의 노래 불면증이 생각난다. 삐삐롱스타킹의 이윤정과 이적이 함께 불렀더랬지.
날 놔줘 난 졸려
가만히 누워 천천히 두 눈을 감으면 될꺼야
이젠 내겐 잠이 필요해
내 두눈은 붉게 떨리고
끝없는 하루 무거운 시간들
쏟아져내려 나를 비틀고있어
하지만 난 너무 두려워
죽음처럼 깊이 잠들면
까만 까마귀 높이서 맴돌다
내 눈을 먹고 꺄악 웃는다 했어
반복되는 승강기에 머릴 기대고
시계처럼 토해대는 너를 바라봐
너의 진한 핏속에 너 말고 누가 있어
찢어지는 비명에 끌려하루 쉴새없이
굳어버린 너의 몸을 떼어주는 동안
날 놔줘 난 졸려 무섭지 않아 천천히
두눈을 감으면 될꺼야
머리위에 비틀거리지 다 눈을 뜨고 미쳐가겠지
흐려지는 머릿속 깊이 짙은 안개가 피어나지 숨이막히는..
두눈을 감으면...
모든 불행은 질투와 시기로부터 잉태하여 의심이라는 다리를 건너 비로소 완성된다.
여인을 사랑할 수 없는 왕. 그런 왕이 사랑하는 한 남자.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왕으로부터 소외된 왕후.
쌍화점은 동성애 코드를 소재로 하지만 동성애 영화는 아니다.
상관없이 기어코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다.
글쟁이 출신 답게
쌍화점 역시도 수작이다.
또 한가지. 오랜 궁금증 중 하나.
사랑은 본디 '몸'이 먼저인가, '마음'이 먼저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
원주에 내려왔다.
너무도 답답했던 집을 떠나.
그렇다. 너무도 답답했다. 집은.
난 어쩌면 이 외로움을 즐기는 지도 모르겠다.
혼자라는 사실을 슬퍼하고, 그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난 이 외로움을 사랑하나보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나. 하지만 너무도 밉고 너무도 너무도 가증스런 나를 난 너무도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망가져가는 내가
너무도 밉다.
무엇인가 필요한데도 그 필요함을 찾아 헤메는 데도 (아니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타나지 않는 그 필요함.
사랑이다. 그건. 내가 필요한 것.
주님. 어머니. 난 그 사랑만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나에게의 사랑. 난 너무도
욕심쟁이다.
나의 이 바보같음. 철없음.
왜 난 언제나 기다려야 하고 참아야 하고 후보가 되어야 하고 왜 왜 왜 난 난...
담배. 담배. 담배.
담배를 피우자. 담배를 피우자. 이 내 고민들이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리도록
제발.
담배를 피웠다. 담배.
모두들 나보고 좀 더 진지해지라고 한다.
진지하라구? 흥.
하지만 난 어느새 얼띵이가 되어 있다.
정말 미웠다. 동기들. 친구들.
하지만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난 너무 좋았다.
왜냐구?
난 그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女)은 모두
날 사랑치 않았을까.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말이 현실에서 느껴질수록
난 너무 괴롭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혼란스럽기만한 나의 뇌세포들을.
현실에만 서면 변해버리는 나의 위선.
아니야 그건 위선이 아니다.
그냥 난.
그런 놈일 뿐이다.
I am me.
그게 정말 내 운명일까.
언제나
기다리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난 혼자라는 것이.
난 연기를 하고 싶다.
도대체 왜 연기를 하고 싶을까 난.
알 수가 없다. 왜 연기를.
언제부턴지 기억나지 않는다. 왜 내가.
마약이다 담배는.
해답을 찾고 싶다. 해답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거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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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에 취해 '삶은 혼자'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20살의 나는
십여년이 지난 지금 삶의 해답을 찾았을까?
전혀.
오히려 질문은 더욱 커졌고, 많아졌으며, 복잡해졌다.
그런거다. 삶은. 평생 풀어야할 숙제인 셈이다.
창조주는 왜 이렇듯 '아름다움'을 다양하게도 창조하셨을까.
말 그대로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꽃이 저렇듯 아름다울진대 하물며 인간은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되었을까.
그러한 인간(들)이 저 부끄러움도 모르고 '추'하게(들) 살아가니.
슬프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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