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시사

행복하지 않다면 출산율은 오를 수 없다

불닭국밥 2023. 3. 23. 15:58

나는 연애를 하고 있지만, 결혼 적령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 즉 출산율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이야기하려면 그냥 내 이야기만 풀어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보편적 화두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가져오려고 한다. 그것은 마이클 무어의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다. 2015년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때도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안지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에는 앞으로 8년 뒤에 출산율 대재앙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8년 뒤의 세상이 이렇게 퇴화할 줄도 몰랐다. '다음 침공은 어디?'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는 개봉 후 8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구 감소가 더 현실화되는 지금, '다음 침공은 어디?'는 출산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한계가 많아보인다. 어쩌면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다음 침공은 어디?'는 마이클 무어가 전 세계 12개 나라를 돌면서 그 나라의 훌륭한 제도를 '훔쳐온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훔쳐온다'는 설정은 미국이 중동국가에서 석유를 훔쳐오는 대신 더 좋은 걸 훔쳐오자는 마이클 무어식의 농담이다. 그는 정말로 성조기를 들고 다른 나라로 향해 깃발을 꽂는다. 그가 맨 처음 간 나라는 이탈리아다. 마이클 무어는 이탈리아에서 기업의 근무형태를 살펴본다. 이탈리아는 유급휴가가 무려 8주 동안 주어진다. 이 나라의 근로자들은 "12월은 월급을 2배로 받는다"고 말할 정도로 1년에 두 달을 돈 받고 쉰다. 마이클 무어가 만난 젊은 부부는 8주의 유급휴가 동안 해외여행도 떠나고 휴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8주 유급휴가 동안 부부 사이가 뜨거워져서 아이를 낳게 되면 육아휴직을 5개월 동안 쓸 수 있다. 마이클 무어는 이런 주장에 대해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자의 입장도 들어본다. 그는 오토바이 제조공장인 두가티와 의류 제조공장 라디니를 찾아간다. 라디니는 돌체앤가바나, 베르사체, 버버리 등에 의류를 공급하는 하청기업이다. 이곳의 고용자들은 공통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직원이 행복해야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 특히 라디니의 오너가는 "더 이상 부자가 돼서 뭘 하느냐?"라는 명언을 남길 정도다. 

비슷한 맥락으로 독일은 워라밸이 보장된 것으로 유명한 나라다. 이 나라에서 점심시간은 무려 2시간씩 주어지며 이때 사람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 마이클 무어가 독일에서 주목한 것은 전범국가로써의 과거를 미래세대들에게 끊임없이 교육한다는 점이다. 요즘 일본을 보면 독일의 이런 태도가 더 위대하게 보이긴 한다(독일과 일본을 비교한 한국의 어느 정치인의 말은, 독일 사람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이런 독일의 태도 못지 않게 공장에 창문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직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는 게 고용주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는 독일인의 태도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문득 한국의 근로자에게 8주의 유급휴가를 준다면 어떨지 생각해봤다.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 혹은 배민이나 쿠팡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대리운전 기사를 하는 등 부업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한국인은 8주 유급휴가를 온전히 쉬는데 쓰지는 못한다. 이는 내집마련과 학자금 대출 상환의 압박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떠안고 있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의 압박을 느낄 때쯤 영화는 슬로베니아로 향한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슬로베니아는 세계에서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20개 국가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슬로베니아의 대학생들은 빚이 없이 당당하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 특히 슬로베니아의 이런 교육복지는 유학생들에게도 적용된다. 오죽했으면 미국에서도 유학을 갈 정도다. 교육복지가 유명한 나라는 핀란드다. 핀란드의 학생들은 일주일에 32시간만 학교에서 보낸다. 그 외에 시간은 개인생활을 한다. 마이클 무어는 핀란드의 한 교사에게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동네에서 나무나 타고 다니면 어떡하냐?"라고 묻는다. 그러자 교사는 "그러면 나무를 잘 타는 아이가 되겠네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객관식 시험이 없고 모든 시험은 서술형이다. 핀란드의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가장 좋은 학교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꼽을 정도다. 마이클 무어는 핀란드의 교사들에게 "미국에서는 시를 쓰는 법이나 체육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자 핀란드의 교사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탈리아 오토바이 제조사인 두가티는 느린 공정을 고집하는 대신 직원의 워라밸과 제품의 질을 챙기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다음 침공은 어디?'에 담긴 출산율 대책은 꽤 간결해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는 청년들이 행복감을 느껴야 하고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도 즐겁게 학교를 다니고 배움에 흥미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청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출산율 데이터뿐 아니라 자살율 데이터만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즐거운가?"라고 물어봐도 "그렇다"라고 대답할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청년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아이들이 공부가 즐겁지 않은 이유는 깊게 들어가면 다른 원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모두 똑같다. 한국에서는 태어난 이후부터 삶의 매순간마다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태어나기 위해 정자단계에서부터 하는 경쟁은 만국공통인 만큼 넣어두기로 하자).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경쟁해야 하고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실적으로 경쟁한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사는 게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고 그렇게 승리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는다. 

이는 한국의 지리·역사적 특성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다. 많은 외세의 침략이 있었고 부정한 권력자가 힘없는 시민을 억압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인들은 경쟁을 통해 힘을 길러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것만이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경쟁이 행복을 보장한다'는 생각은 역사에서 배워서 우리 유전자 안에 깊게 새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조건 경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공을 바란다면 경쟁은 불가피한 일이다. 과거 서장훈이 말했듯이 성공을 바란다면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한다. 다만 성공이 아닌 행복을 바란다면 맥락은 달라진다(성공과 행복은 무조건 함께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인식 변화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관습·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경쟁에서 패배한 것은 그저 그 순간의 경쟁에서 졌음을 의미한다. 경쟁해야 하는 그 분야에서는 패배했지만, 그것이 온전히 한 인간의 패배를 의미하진 않는다. 푸코의 권력담론처럼 인간주체는 고정되거나 불편하지 않는다. 지식과 권력에 의해 여러 형태로 이동된다. 예를 들어 '더 글로리'에서 나온 것처럼 혜정(차주영)은 학창시절 동은을 괴롭힌 무리에 속해있었지만, 나중에 동은(송혜교)는 혜정의 예비 시어머니와 각별한 사이로 나타나게 된다. 학창시절 동은과 혜정의 관계에서 권력은 혜정에게 있었지만, 어른이 돼서 권력은 동은에게로 이동된 셈이다. 이처럼 권력은 언제든 이동할 수 있지만, 어떤 한국 사람들은 경쟁관계 하나로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 시험성적이 잘 나오지 못했거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거나, 회사에서 좋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면 사람 자체를 패배자로 만들어서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그런 정서는 우리를 지나치게 열심히 살도록 만든다. 회사에서 좋은 실적을 내기 위해 가정을 포기하거나,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건강을 포기하는 등. 이것은 경쟁이 승패와 상관없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매커니즘이다.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보여주는 기업·학교의 마인드는 경쟁을 지양하는데 있다. 이탈리아의 오토바이 제조사 두가티는 대단히 느린 제조공정을 가지고 있다. 경쟁사의 오토바이에 비하면 생산량은 현저히 떨어질 수 있지만, 느리게 생산하는 만큼 제품의 질을 추구한다. 명품 브랜드에 의류를 납품하는 라디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삼성전자가 애플, 화웨이, 샤오미와 경쟁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한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삼성전자에게 "경쟁을 조금 내려놓더라도 명품을 만들라"고 충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직원의 워라밸을 보장하는 것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한 예로 방송국 PD 출신들은 넷플릭스나 웨이브 등 OTT와 작업하면서 가장 좋은 점으로 '표현의 자유'와 '넉넉한 제작기간'을 꼽았다. '품질'은 산술적 데이터를 내기 어려운 영역이다. 대신 '물량'은 데이터를 낼 수 있다. 한국의 기업은 데이터의 우위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다른 기업과 경쟁한다. 직장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이 데이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성적·실적이 중심이 되고 그 가운데 인격과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는 한국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불행한 사회에 던져질 게 뻔한 아이들을 굳이 낳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경쟁이 부르는 폐해는 한국영화 '다음 소희'에서도 드러난다. 통신사 콜센터 여직원 사망사건을 영화화 한 이 작품은 고등학교 현장실습에 나간 한 아이의 죽음만을 쫓지 않는다.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모든 책임자(하청회사, 학교, 교육청 등)가 실적에 발목 잡힌 현실을 보여준다. 갓 스무살이 되지 않은 아이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는 실적으로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의 책임이 크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기성세대들은 "우리 때는 더 척박한 환경에서 결혼하고 아이낳고 다 했어"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보다 현재의 경쟁환경이 더 척박하다. 경제성장의 단계, IMF로 초토화되고 다시 일어서는 단계에서는 여러 기회가 열려있었다. 맨땅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환경인 만큼 여러 선택지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스템은 너무나 견고하다. 이 견고한 시스템은 경쟁을 유도하고 거기서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도록 설계돼있다. 한 예로 30년전 삼성전자에 입사한 근로자가 당시 스펙으로 지금 삼성전자에 이력서를 내밀면 입사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매순간 무언가에 쫓기면서 다른 무언가를 쫓아야 하는 게 2023년 대한민국 청년과 아이들의 삶이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업을 얻고 회사에서 실적을 올려서 승진하는 것만이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주입돼왔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회사에 들어가는 대신 유튜버를 하거나 아이돌을 해도 큰 성공을 할 수 있다. 1인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기나 아이돌로 성공하기. 그 경쟁환경도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그 밖에 다른 선택지가 있을까? 애석하게도 기성세대와 그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미디어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환경미화원을 보면 엄마들은 아이에게 "공부 안하면 나중에 저런 일 하는거야"라고 교육하는 사회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매순간 경쟁해야 한다. 행복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한국의 인구감소가 심각한 수준인 만큼 조금 극단적인 이야기도 해야겠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른들의 목소리가 큰 나라다. 유교국가인 만큼 어른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새겨져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식의 변화도 그만큼 빠르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시월드'는 인식의 변화를 쫓지 못한 '시댁의 만행'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변했다면 그 세상의 질서를 결정하는 것도 청년에게 맡겨야 한다. 이는 "어른 말씀에 무조건 개겨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사회지도층에 해당하는 정치권에서라도 기성세대는 빠르게 퇴장해야 한다. 최근 정부 관계자는 주 69시간 근무에 대해 언급하면서 "MZ세대가 좋아한다"고 말했다. 정작 'MZ'에 해당하는 세대들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한국에서 정치인은 유난히 벽이 높다. 정당정치가 지나치게 발전하면서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정당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막상 정당에 들어가면 4, 5선을 하고 있는 거물들이 버티고 있다. 초선, 재선을 맛 본 정치인들도 더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당장 국회를 살펴봐도 40대 이하 청년 정치인들의 비중은 현저히 적다. 국회에서 'MZ'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싸우는 정치인들은 있다. 그러나 가끔 그들의 싸움은 꽤 처절해보인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는 선거가 아니라 출마의 자격을 얻기 위해 커리어를 쌓는 과정을 말한다. 좋은 대학에 나와야 하고 충분한 재력이나 인맥을 확보해야 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눈썹'에는 일본의 황당한 정치인이 등장한다. 그는 지방선거에 AI당이나 비트코인당 같은 황당한 정당을 만들어 출마한다. '다음 침공은 어디?'에도 아이슬란드의 '최고당' 의원이 등장한다.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다. 이 여성 대통령은 젊은 싱글맘이다. 국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정치가 거세지고 이념 대립이 심한 한국 정치 특성상 한국의 정치 문턱은 지나치게 높다. 이는 새로운 인물을 배출하거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데 장애가 된다. 이것 역시 경쟁 중심으로 구축된 사회 구조가 낳은 결과물이다. 

결국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 기성세대들은 입을 닫고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게 도와줘야 한다. 기성세대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청년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고 가치있는 배움을 마련하는 길이다. 그리고 정치의 문턱을 낮춰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와 함께 정당정치를 통한 극단적인 이념대립을 멈춰야 한다. 사실 정당정치는 (마이클 무어가 애증하는) 미국이 더 극심할 수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은 한국 못지 않게 극심하지만, 때로 그들은 국익을 위해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민주주의라는 게 국익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전제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의 정치는 문턱을 낮추되 더 성숙해져야 한다. '다음 침공은 어디?'가 알려주는 출산율 문제 해결의 모범답안은 청년과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그 의견 하나하나가 모여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게 출산율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다. 


절망적인 출산율 데이터는 청년들의 행복지수와도 같다. 그래프 출처는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 경북매일

추신)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는 교육이나 근로 외에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한국인이 공감하기 어렵거나 논쟁을 불러올 정책도 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의 '마약 합법화' 정책이나 노르웨이의 교정 행정이다. 포르투갈의 마약 합법화는 마약으로 인해 수반되는 부수적인 범죄(조직폭력, 강도, 살인 등)율을 낮췄다. 여기에는 무상 의료제도도 크게 한몫했다.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유명한 호화 교도소를 가진 나라다. 강력범죄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한국에서는 노르웨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기준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재범률이 가장 낮은 나라(20%)다. 심지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7월 22일'의 실제 주인공의 아버지(10대 아들이 여름 캠프를 떠났다가 네오나치의 총에 맞아 사망함)는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라는 마이클 무어의 질문에 "아니다. 복수는 나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법정 최고형은 21년이다. 한국의 교정 행정은 재범률을 낮추거나 범죄자를 엄벌하거나, 어느 쪽에서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의 국민들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바라고 있다. 포르투갈과 노르웨이의 정책은 우리에게 큰 담론을 던져줄 수 있다. 

튀니지와 아이슬란드는 여성복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튀니지는 독재자에 맞서 싸우고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가 가장 활발한 나라다. 그 결과 '무상 여성보건소'라는 제도가 마련됐다. 당연히 낙태도 합법이다. 한국에서 여성 복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페미니즘 논쟁'이 점화될 수 있다. 출산율 문제 해결이라는 전제 하에 여성 보건의료 정책은 페미니즘과 별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는 혼자 낳는 게 아니다'라고 하지만, 적어도 자궁의 주인은 여자다. 자궁의 주인에 대한 편의를 보장하는 것은 출산율 문제 해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다. 아이슬란드로 향하면 여성 복지는 좀 더 극단적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나라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 당시 큰 타격을 입은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이 CEO로 있는 은행만 망하지 않았다(이는 아이슬란드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이다). 아이슬란드는 기업과 정치에서 여성의 참여가 대단히 활발한 나라다(기업 이사회의 절반이 여성일 정도로). 이는 단지 '여성'이라서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정치 참여가 활발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전제 하에 유능한 여성의 참여를 더 활발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마련된다면 역시 큰 논란을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