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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야자수와 전선' - 사악한 행위에 대한 이해

션 베이커의 '레드 로켓'은 꽤 충격적인 영화다. 적어도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풋풋하고 애절한 영화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한물간 포르노 배우와 10대 소녀의 관계를 다룬 이 영화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준의 충격을 줄 수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영화 '탠저린'을 본 관객이라면 이 감독이 마냥 감성 충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션 베이커의 영화는 감성보다는 밑바닥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강하다. 로스앤젤리스('탠저린')와 플로리다('플로리다 프로젝트'), 텍사스('레드 로켓') 등 미국의 유명한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누구도 찾아가보지 않을 것 같은 뒷골목을 배경으로 그곳의 삶을 보여주는 게 션 베이커 영화의 특징이다. 다행스럽게도 '레드 로켓'의 파렴..

콘텐츠/리뷰 2022.10.24

LIFE, 의지대로 사는 삶의 축복

※ 이 글은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플랜75', '인체해부도', '눈썹', '바르도, 약간의 진실을 섞은 연대기' 외에 '아워바디'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언급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다른 사람과 유기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랑하다 다투고, 미워하고 원망하다 후회하고 화합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변하는 관계 속에서 개인의 온전한 삶은 완성된다. 레니 에이브러햄슨의 '프랭크'나 정윤석의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눈썹'을 보면서 '관계'라는 게 때로는 고통이 될 수 있고, 그 고통의 근원인 언어로부터 해방을 꿈꾼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쓰고 만든 사람 역시 관계가 있었기에 영화라는 공동..

콘텐츠/기획 2022.10.19

[스포주의] '너와 나' - 희뿌연 꿈을 붙잡는 나직한 인사

※ 경고: 이 글에는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영화가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고, 누군가는 남겨진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담았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는 희뿌연 꿈을 꾼다.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희뿌연 운동장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 영화가, 소위 말하는 '뽀샤시 효과'를 집어넣어 촬영했다는 것은 스틸컷을 보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은 그 뽀샤시의 한계를 넘어서 '현상 중 사고'라고 생각될 정도로 빛이 과하게 들어와있었다. 나중에 카메라가 줌아웃되면서 운동장은 유리창 밖 풍경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영화의 무대가 되는 교실, 새미..

콘텐츠/리뷰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