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14

(스포주의) '아노라' & '우리들의 교복시절' - 왜 지금 신데렐라를 부정하는가

※ 이 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상한 '아노라'와 '우리들의 교복시절'에 대한 리뷰입니다.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서양의 전래동화인 '신데렐라'는 계모와 새언니들의 핍박을 견딘 주인공이 하룻밤 마법으로 왕자와 만나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동화'다.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을지 몰라도 요즘은 '유치한 이야기'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신데렐라'는 뒤에 '콤플렉스'라는 말이 붙어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 됐다. '신데렐라'라는 단어에 더 이상 동화적 낭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1981년 콜레트 다울링의 저서에서 유래됐다. 벌써 40년도 더 된 말이지..

콘텐츠/리뷰 2024.11.05

(스포일러)'대결! 애니메이션' - 그래도 내일은 온다

영화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이 정해진 시간 동안 주인공은 '기-승-전-결'을 경험한다. 여기서 '결'에 이르면 영화의 시간, 이야기 주인공의 시간은 끝이 난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끝이 나더라도 주인공의 삶이 어디선가 계속 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보이후드'는 이런 실험의 끝에 선 영화다. 같은 인물들의 성장을 담기 위해 12년동안 촬영한 이 영화는 영화적 시간과 삶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이 실험을 겪고 나면 영화가 끝나도 인물들이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 기대는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든다. '보이후드'에 비하면 '대결! 애니메이션'은 시작과 끝이 상당히 명확한 영화다. 이 ..

콘텐츠/리뷰 2024.03.18

[스포주의] '패스트 라이브즈' - 공간이 분리되기까지

기억은 매개체를 통해 명료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장소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날 먹었던 음식이나 거리에서 흘러나왔던 음악, 입었던 옷, 액세서리 등 사소한 몇 개의 매개체가 기억을 더 명료하게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매개체는 온전히 한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 광화문에서 자주 데이트를 했다면 광화문이라는 장소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이어진다. 연인이 국물닭발을 좋아했다면 국물닭발이 곧 그 사람으로 기억된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기억이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공간'은 기억의 매개체로써 아주 탁월하다. 공간은 인위적으로 만든 매개체가 아니라 기억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매개체다. 텅빈 카페..

콘텐츠/리뷰 2024.03.04

(스포일러)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 신에게 버려진 재난에서 살아남기

불의의 사고로 외딴 곳에 조난당한 인물의 이야기는 꽤 전통이 깊다.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준다. 불의의 사고를 이겨내고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닥쳐온 각자의 현실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르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사고를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가 존재해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좁아지면서 관객들은 더 멀고 외딴 곳에서 조난당한 사람의 생존이야기를 요구한다. 오죽하면 급기야 지구 넘어 달이나 화성에 조난당한 사람을 구해내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우주 한복판에 조난당한 사람이 스스로 살아남아 지구로 귀환한다던지,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며 버텨서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

콘텐츠/리뷰 2024.02.06

[스포주의] '립세의 사계' - 스스로 구원하기

나는 시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는 단순히 화려한 CG를 쓰거나 액션연출이 정교한 영화만을 말하지 않는다(물론 그런 영화들도 좋아한다). 빛과 어둠으로 빚은 그림같은 화면과 정성스런 미장센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명세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영화가 대표적이다. 그런 내 취향에 웰치맨 부부의 영화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유화로 그린 애니메이션'이라는 다소 정신나간 발상으로 시작해 미쳐버린 장인정신으로 프레임 하나하나 그려낸 '러빙 빈센트'는 이전에는 본 적 없었던 황홀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부부가 또 한 번 미쳐버린 장인정신을 보여주며 신작을 내놨다. 이번 작품에 대한 관객 반응은 전작 '러빙 빈센트'와 달리 엇갈리는 모양이다. 관객들이 벌써 유화 애니메이션에 적응한 건가 싶..

콘텐츠/리뷰 2024.01.15

그들 각자의 묘비명 - "나는 이렇게 살았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인간의 생애주기로 봤을 때 나는 아직 죽음을 걱정할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나보다는 죽음에 조금 더 가까워진 나이기는 하다. 주변 사람들이 결혼하던 시기를 지나 돌잔치를 하던 시기를 거치고 나면, 주변 사람들의 가족들이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온다. 그 시기가 나면 친구와 형제가 세상을 떠나는 시기가 오게 된다. 아마 그때쯤,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약 그때가 온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죽음을 가까이 두지 않아서 그 생각에 감히 근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을 가까이 둔 노인의 생각을 읽어보면, 죽음이 삶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는 참 좋은 것 같다...

콘텐츠/리뷰 2023.11.06

[스포주의] 넷플릭스 'D.P 2' - 부조리의 근원을 찾아서

※ 이 글은 넷플릭스 'D.P' 시즌2 프레스 스크리닝으로 4화까지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군대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보병으로 복무하거나 포병 등 전투병과에서 군복무를 한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다소 낯선 보직에서 군복무를 하기도 한다. 이는 전투지원병과인 공병이나 행정병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낯선 보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장 관리병이나 CP병, 군 전용 콘도 관리병도 존재한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군단지원병원에서 작전보안병으로 복무했다. 보병, 포병으로 복무한 친구들은 군 병원에 간 나를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김보통 작가가 했다는 'D.P' 역시 처음 보는 보직이다. 탈영병 체포조라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이 일을 병사에게 시킨..

콘텐츠/리뷰 2023.07.18

어떤 영화의 끝없는 싸움: 자본 계급을 조롱하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불평등을 상징하지 않는다. 계급의 투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성장동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마치 '설국열차'처럼 한정된 공간 내에서의 인구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적당한 계급 투쟁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 기관사 공백을 최소화해 열차를 계속 운행시킨다. 단지 인구과밀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더라도 계급투쟁은 정체된 사회의 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여기에는 지도자가 바뀜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정치 이념의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명사회에서 '계급'은 로마 시대부터 존재했었고 그것은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계급은 주로 직업이나 신분, 출생에 기인했다. 왕족부터 시작해 귀족, 종교계, 상인, 노비 등. 부모의 신분은 그 자녀의 신분을 태어날 때부터 결..

콘텐츠/기획 2023.07.11

[스포주의] '바빌론' - 무성영화의 퇴장을 보며 극장영화의 퇴장을 걱정하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화려했던 영화의 에필로그는 쓸쓸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막을 내린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이 뒤엉킨 L.A의 석양처럼 찰나의 순간은 지나가고 음악은 끝이 난다. 그와 함께 아름다웠던 남녀의 성공기도 끝나고 관객들은 극장을 나선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영화보기 자체를 사소한 허상처럼 만들어버린다. 마지막 장면 속 남녀의 엇갈림과 별개로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엇갈렸기 때문에 그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공허한 감정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극장 밖으로 나섰을 때 인상적이었던 몇 개의 장면과 음악은 휘발되고 공허한 감정만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더 오래 기억되는 방법이다. ..

콘텐츠/리뷰 2023.02.06

[스포/뇌피셜 주의]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 이 글은 전적으로 '뇌피셜'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저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반박시 님 말이 다 맞습니다. '더 글로리'가 파트1과 파트2로 나눠지는 것은 같은 이야기지만, 결이 달라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파트1 8화의 마지막에서 충분히 암시됐다. 하도영(정성일)은 박연진(임지연)과 문동은(송혜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걸 암시했고 주여정(이도현)은 본격적으로 동은을 위해 칼춤을 출 예정이다. 이에 따라 파트2에서는 파트1과 몇 가지 지점이 달라질 전망이다. 1. 경란(안소요)의 등장 - 동은(정지소)이 학교를 자퇴하면서 연진의 일당들은 경란을 새로운 타겟으로 삼게 된다. 경란은 현재에서도 재준의 옷가게에서 일하며, 연진의 짐을 들어주며 오랜 기간 폭..

콘텐츠/의견 2023.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