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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닭국밥의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11편

※ 본래 10편을 고르는게 국룰이지만 본인의 결정장애 영향으로 11편을 선정했습니다.  '추락의 해부' - 나는 '육각형의 영화'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구조가 탄탄하고 이야기에 몰입감이 넘쳐 어느 한구석도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영화는 리뷰를 제대로 쓰기도 어렵다. 빈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추락의 해부'는 '육각형 영화'에 가깝다. 차분하고 묵직하지만,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치고 끝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치닫는다. 이야기의 긴장감과 재미도 충만하며 뛰어난 미장센과 연기를 자랑한다. 영화의 사회적 책임에도 충실하며 오랜 시간 회자될 화두를 던진다. 심지어 개도 명연기를 펼친다.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다.  '챌린저스' - 어떤 상업영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말 그대..

콘텐츠/기획 2024.12.19

도쿄에 다녀왔습니다만... Day 1

4월말에 일본여행을 다녀온 나에게 "왜 7개월만에 또 떠났는가?"라고 묻는다면 몇 가지 그럴싸한 이유로 답을 할 것이다. ①4월말에 갔던 홋카이도가 꽤 재밌었고 ②지난 몇 년간 여자친구와 제대로 여행을 다니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아직 덜 해소됐으며 ③일본이라는 나라에 궁금한 게 조금 더 생겼다. 이 이유들은 어쩌면 핑계일 수 있다. 나는 대외적으로, 그리고 여친에게 '7개월만에 또 일본으로 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엔화가 남아서". 실제로 나는 홋카이도에 갔을 때 10만엔의 엔화를 바꿨고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4만8000엔 정도 남아있었다. 그 때 이후 엔화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특히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는 미친 듯이 올라버려서 "바꿀까?"라는 미련도 있었지만, 기왕 예약 다 한 거..

일상 2024.12.18

어쩐지 2025년에 잘 될 거 같은 배우 10인

김재철 - 이 배우의 경력은 대단히 화려하다. 연극무대에서도 잔뼈가 굵은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맡으며 필모그라피를 쌓아갔다. 그는 아마도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다"라는 기대로 험난한 배우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올해 개봉한 영화 '파묘'는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파묘'에서 그가 연기한 박지용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포와 무게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동안 이 배우는 '바람'의 '3학년 선배'로 기억돼왔다. 그러나 올해 '파묘' 이후 '행복의 나라'와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이 배우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장다아 - 장다아는 데뷔 전부터 '장원영 언니'로 알려졌다...

콘텐츠/기획 2024.12.17

(스포주의) '아노라' & '우리들의 교복시절' - 왜 지금 신데렐라를 부정하는가

※ 이 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상한 '아노라'와 '우리들의 교복시절'에 대한 리뷰입니다.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서양의 전래동화인 '신데렐라'는 계모와 새언니들의 핍박을 견딘 주인공이 하룻밤 마법으로 왕자와 만나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동화'다.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을지 몰라도 요즘은 '유치한 이야기'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신데렐라'는 뒤에 '콤플렉스'라는 말이 붙어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 됐다. '신데렐라'라는 단어에 더 이상 동화적 낭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1981년 콜레트 다울링의 저서에서 유래됐다. 벌써 40년도 더 된 말이지..

콘텐츠/리뷰 2024.11.05

(스포일러) '조커: 폴리 아 되' - 잘 만든 실패작

'조커'는 1편에서도 개인적인 불만이 있었다. 이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하는데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불만이다.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빌런'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는 목적이 없는 악당이다.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배경도 알 수 없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자신의 입가에 흉터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 매번 다르게 설명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는 빌런은 꽤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조커는 코믹스에서도 등장하지만, 배트맨의 이면(異面)과 같은 캐릭터다. 조커는 배트맨이 있어야 완전해지며 둘은 서로가 없다면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이들 모두를 부정해버린다. 호아킨 피닉스가..

콘텐츠/리뷰 2024.10.04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5 (마지막)

모든 여행이 마찬가지겠지만, 마지막 날에는 집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마지막 날에는 별로 쓸 후기가 없다. 마지막 날 우리가 타야 하는 비행기는 오후 4시 20분에 출발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전에 삿포로역 주변에서 해야 할 쇼핑만 대충 하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향하기로 했다. 여친은 이미 돈키호테에서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잔뜩 샀다. 난 딱히 선물 줄 친구가 떠오르지 않아서 내가 먹을 것만 잔뜩 샀다가 "그래도 엄마 드릴 선물을 사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샵에 파는 건 대체로 식품류다. 과자나 식품 종류를 사다 드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좀 더 고급진 물건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차(茶) 종류를 선물하기로 했다. 일본 여행 내내 먹었던 우롱차나 호지차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상 2024.06.10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4

여행 4일차는 본격적인 삿포로 여행의 막이 오르는 날이었다. 이날 우리의 첫 목적지는 마코마나이타키노레이엔이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보면 한국인들이 아예 안 가는 여행지는 아니다. 그러나 많이 찾는 여행지도 아니다. 정확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이곳은 일본 삿포로 남쪽에 있는 공원묘지다. 삿포로 시내를 가로지르는 난보쿠선을 타고 남쪽 끝에 위치한 종점 마코마나이역에 도착한 다음 버스를 타고 또 들어가면 산기슭에 나오는 게 이 공원묘지다. 이곳을 알게 된 건 김지운 감독의 인스타 스토리에서다. 감독님은 당시 삿포로 여행(인지 비즈니스인지 알 수 없지만)을 다녀오면서 낯선 장소의 사진을 올렸다. 탁 트인 평원 위에 모아이 석상이 줄지어 서있었고 판테온 형태의 원형 공간에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

일상 2024.06.05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3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속으로 생각한 게 있었다. 라멘, 스시 위주로 식사를 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일본의 정체성을 외면하더라도 현지인들의 일상이 녹아든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 첫날에도 피자와 맥주를 먹었고 이후 삿포로에 넘어가서도 관광객 맛집은 가급적 피할 생각이었다. 예전부터 명동이나 을지로를 돌아다니면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들을 겨냥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비빔밥이나 불고기, 삼겹살 등을 파는 집이었다. 나는 그들을 볼 때면 "더 맛있는 집이 많은데"라며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내가 그들의 위치에 서고 나니 비빔밥, 불고기와 같은 위치에 있을 것 같은 라멘, 스시는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이후 여행에서 적어도 한 번은 라멘..

일상 2024.05.28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2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던 노보리베쯔를 떠나 조금은 도시에 가까운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나중에 삿포로에 가서 깨달았지만, 하코다테도 결국 시골은 시골이었다. 나는 하코다테에 대해 정보가 많지 않았다. 거의 유일한 정보라면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 '하코다테에서 안녕'에 담긴 풍경뿐이었다. 그 단편영화마저 눈이 소복히 쌓인 한 겨울의 하코다테였으니 4월말의 하코다테와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정보가 부족했으니 하코다테에서 뭘 할 지는 세세하게 정하기 어려웠다. 홋카이도에 거주 중인 지인은 하코다테의 아침시장을 추천했다. 시장 구경은 즐거운 일이다. 지역의 특산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현지인들의 삶의 방식이 가장 잘 담긴 곳도 시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도 시장 풍경에 대해 기대하..

일상 2024.05.23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1

나는 '여행'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가보고 싶은 도시(하바나, 뉴욕)나 나라(안도라, 그린란드)가 몇 군데 있었지만, 당장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외의 장소에 대해서는 굳이 궁금한 게 없었다. 살면서 가 본 여행이라고는 매년 가는 전주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가 전부였다. 그만큼 여행을 갈 시간에 재미있는 영화나 연극을 하나 더 보는 게 좋았다. 겁이 많아서 여행을 기피한 이유도 있었다. 평소에 공포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대해 불신이 컸다. 어디 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서워서 여행을 못 가겠다"라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너를 무서워 할거야"라고 답했다(체격이 큰 편이다). 여행을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 '떠나야 ..

일상 202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