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36

불닭국밥의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 11편

※ 본래 10편을 고르는게 국룰이지만 본인의 결정장애 영향으로 11편을 선정했습니다.  '추락의 해부' - 나는 '육각형의 영화'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구조가 탄탄하고 이야기에 몰입감이 넘쳐 어느 한구석도 파고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영화는 리뷰를 제대로 쓰기도 어렵다. 빈틈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추락의 해부'는 '육각형 영화'에 가깝다. 차분하고 묵직하지만, 이야기는 생동감이 넘치고 끝내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치닫는다. 이야기의 긴장감과 재미도 충만하며 뛰어난 미장센과 연기를 자랑한다. 영화의 사회적 책임에도 충실하며 오랜 시간 회자될 화두를 던진다. 심지어 개도 명연기를 펼친다.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다.  '챌린저스' - 어떤 상업영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말 그대..

콘텐츠/기획 2024.12.19

어쩐지 2025년에 잘 될 거 같은 배우 10인

김재철 - 이 배우의 경력은 대단히 화려하다. 연극무대에서도 잔뼈가 굵은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단역을 가리지 않고 맡으며 필모그라피를 쌓아갔다. 그는 아마도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을 거다"라는 기대로 험난한 배우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올해 개봉한 영화 '파묘'는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파묘'에서 그가 연기한 박지용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포와 무게감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동안 이 배우는 '바람'의 '3학년 선배'로 기억돼왔다. 그러나 올해 '파묘' 이후 '행복의 나라'와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올해는 이 배우를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장다아 - 장다아는 데뷔 전부터 '장원영 언니'로 알려졌다...

콘텐츠/기획 2024.12.17

(스포주의) '아노라' & '우리들의 교복시절' - 왜 지금 신데렐라를 부정하는가

※ 이 글은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상한 '아노라'와 '우리들의 교복시절'에 대한 리뷰입니다.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서양의 전래동화인 '신데렐라'는 계모와 새언니들의 핍박을 견딘 주인공이 하룻밤 마법으로 왕자와 만나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다. 말 그대로 '동화'다.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는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을지 몰라도 요즘은 '유치한 이야기'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신데렐라'는 뒤에 '콤플렉스'라는 말이 붙어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 됐다. '신데렐라'라는 단어에 더 이상 동화적 낭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1981년 콜레트 다울링의 저서에서 유래됐다. 벌써 40년도 더 된 말이지..

콘텐츠/리뷰 2024.11.05

(스포일러) '조커: 폴리 아 되' - 잘 만든 실패작

'조커'는 1편에서도 개인적인 불만이 있었다. 이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하는데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불만이다.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빌런'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는 목적이 없는 악당이다.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배경도 알 수 없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자신의 입가에 흉터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 매번 다르게 설명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는 빌런은 꽤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조커는 코믹스에서도 등장하지만, 배트맨의 이면(異面)과 같은 캐릭터다. 조커는 배트맨이 있어야 완전해지며 둘은 서로가 없다면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이들 모두를 부정해버린다. 호아킨 피닉스가..

콘텐츠/리뷰 2024.10.04

(스포일러)'대결! 애니메이션' - 그래도 내일은 온다

영화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이 정해진 시간 동안 주인공은 '기-승-전-결'을 경험한다. 여기서 '결'에 이르면 영화의 시간, 이야기 주인공의 시간은 끝이 난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이야기가 끝이 나더라도 주인공의 삶이 어디선가 계속 될 거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영화 '보이후드'는 이런 실험의 끝에 선 영화다. 같은 인물들의 성장을 담기 위해 12년동안 촬영한 이 영화는 영화적 시간과 삶이 가까워지도록 하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이 실험을 겪고 나면 영화가 끝나도 인물들이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 기대는 삶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든다. '보이후드'에 비하면 '대결! 애니메이션'은 시작과 끝이 상당히 명확한 영화다. 이 ..

콘텐츠/리뷰 2024.03.18

[스포주의] '패스트 라이브즈' - 공간이 분리되기까지

기억은 매개체를 통해 명료해지고 생명력을 얻는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연인과 데이트를 했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장소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날 먹었던 음식이나 거리에서 흘러나왔던 음악, 입었던 옷, 액세서리 등 사소한 몇 개의 매개체가 기억을 더 명료하게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하나의 매개체는 온전히 한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 광화문에서 자주 데이트를 했다면 광화문이라는 장소는 사랑하는 연인으로 이어진다. 연인이 국물닭발을 좋아했다면 국물닭발이 곧 그 사람으로 기억된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기억이 명료해지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공간'은 기억의 매개체로써 아주 탁월하다. 공간은 인위적으로 만든 매개체가 아니라 기억에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매개체다. 텅빈 카페..

콘텐츠/리뷰 2024.03.04

(스포일러)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 신에게 버려진 재난에서 살아남기

불의의 사고로 외딴 곳에 조난당한 인물의 이야기는 꽤 전통이 깊다. 조난당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준다. 불의의 사고를 이겨내고 삶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닥쳐온 각자의 현실 고난을 이겨낼 힘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장르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영화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사고를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가 존재해온 이유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세상이 좁아지면서 관객들은 더 멀고 외딴 곳에서 조난당한 사람의 생존이야기를 요구한다. 오죽하면 급기야 지구 넘어 달이나 화성에 조난당한 사람을 구해내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우주 한복판에 조난당한 사람이 스스로 살아남아 지구로 귀환한다던지, 화성에서 감자를 키우며 버텨서 살아남아 지구로 돌아..

콘텐츠/리뷰 2024.02.06

[스포주의] '립세의 사계' - 스스로 구원하기

나는 시각적으로 만족을 주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는 단순히 화려한 CG를 쓰거나 액션연출이 정교한 영화만을 말하지 않는다(물론 그런 영화들도 좋아한다). 빛과 어둠으로 빚은 그림같은 화면과 정성스런 미장센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명세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영화가 대표적이다. 그런 내 취향에 웰치맨 부부의 영화는 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유화로 그린 애니메이션'이라는 다소 정신나간 발상으로 시작해 미쳐버린 장인정신으로 프레임 하나하나 그려낸 '러빙 빈센트'는 이전에는 본 적 없었던 황홀한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이 부부가 또 한 번 미쳐버린 장인정신을 보여주며 신작을 내놨다. 이번 작품에 대한 관객 반응은 전작 '러빙 빈센트'와 달리 엇갈리는 모양이다. 관객들이 벌써 유화 애니메이션에 적응한 건가 싶..

콘텐츠/리뷰 2024.01.15

이선균 - 출연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린 배우

나는 영화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TV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다.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를 쫓아갈 만큼 집중력과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OTT 이전 시대의 드라마는 한 회차가 끝나면 다음 회차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지겨워서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 챙겨본 드라마를 꼽아보자면 '커피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 '골든타임' 등이 떠오른다. 모두 이선균이 출연한 작품이다. 배우에 대한 리뷰는 꽤 오랜만에 쓴다. 예전에는 배우에 대한 리뷰를 쓸 때는 나름의 규칙을 세웠다. '모두가 인정하는 배우는 쓰지 않는다', '부정적인 내용을 쓸 배우는 아예 쓰지 않는다' 였다. 모두가 칭찬할 배우에 대해서는 전문가도 아닌 내가 리뷰를 하는 일이 큰..

콘텐츠/기획 2023.12.29

불닭국밥의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10편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 이 다큐멘터리는 별 다른 기교가 없다. 그저 엔니오 모리꼬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시간 순서대로 쭉 훑어간다. 여기에는 엔니오 모리꼬네를 잘 알고 그와 함께 작업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참여한 작품, 그리고 '엔니오의 음악'이 함께 하고 있다. 영화를 연출한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엔니오 모리꼬네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는 '시네마천국'부터 거의 모든 작품의 음악을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맡겼다. 엔니오를 잘 아는 만큼 그는 이 다큐멘터리에 별 다른 기교가 필요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저 엔니오의 음악이 이 영화를 완성하게 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쥬세페의 그 선택은 적중했다. 별 다른 기교가 없어도 숨도 안 쉬고 한 사람의 인생을 정주행 할 수 있었다. 위대한 음악들..

콘텐츠/기획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