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홋카이도에 다녀왔습니다만 - Day 4

불닭국밥 2024. 6. 5. 10:50

 

여행 4일차는 본격적인 삿포로 여행의 막이 오르는 날이었다. 이날 우리의 첫 목적지는 마코마나이타키노레이엔이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찾아보면 한국인들이 아예 안 가는 여행지는 아니다. 그러나 많이 찾는 여행지도 아니다. 정확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이곳은 일본 삿포로 남쪽에 있는 공원묘지다. 삿포로 시내를 가로지르는 난보쿠선을 타고 남쪽 끝에 위치한 종점 마코마나이역에 도착한 다음 버스를 타고 또 들어가면 산기슭에 나오는 게 이 공원묘지다. 이곳을 알게 된 건 김지운 감독의 인스타 스토리에서다. 감독님은 당시 삿포로 여행(인지 비즈니스인지 알 수 없지만)을 다녀오면서 낯선 장소의 사진을 올렸다. 탁 트인 평원 위에 모아이 석상이 줄지어 서있었고 판테온 형태의 원형 공간에 거대한 불상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꽤 멋진 공간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가야겠다고 결정적인 생각이 든 건 그 거대한 불상이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건축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오래전 경기도청 블로그팀에서 일할 당시 안양에 김중업건축박물관이 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 간 적이 있다. 그곳은 과거 유유산업의 공장이 있던 곳으로 공장 디자인을 김중업 건축가가 맡았다. 오래된 낡은 건물이지만, 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의식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건물이 의식을 하고 자세히 관찰하자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곳을 '오래된 미래'라고 불렀다. 김중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건축에 대해 얕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영화와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교양있는 척'을 하고 싶다면 건축에 관심을 갖는게 좋다고 늘 말하고 다닌다. 이번 여행에서도 건축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하코다테를 여행코스에 넣었다. 마코마나이타키노레이엔도 그런 목적이었다. 

안도 타다오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건축가다. 그의 작품 중 마곡에 있는 LG아트센터를 자주 방문한다. 원래 안도 타다오의 물의 교회에 가보고 싶었다. 유현준 교수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눈 덮인 물의 교회를 보고 가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물의 교회가 위치한 토마무 리조트는 겨울에 스키타러 가는 게 좋다고 한다. 애초에 늦은 봄에 간데다 나는 스키도 못탄다. 토마무 리조트는 삿포로에서 꽤 오랜 시간 가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의 교회를 포기했다. 그 대신 선택한 게 두대불전이었다. 나중에 짐작했지만, 카페와 식당이 위치한 안내동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마코마나이역에서 108번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저 멀리 불상 머리가 보인다.


일본에 처음 간 입장에서 버스를 한 번 타보고 싶었다. 현지 사람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게 대중교통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좋아한다. 마코마나이역에서 공워묘지로 가는 길은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곳곳에 벚꽃이 피어있었고 아담한 집들이 자유로우면서 조화롭게 펼쳐져있었다. 흡사 남양주 외곽 어디쯤이 떠올랐지만, 그곳보다는 활기가 넘치고 예쁜 동네였다. 서울 외곽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점점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는 게 느껴질 때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가는 버스는 2개 노선이 있다. 하나는 정문 앞에 내려주는 106번, 하나는 대불상 근처에 세워주는 108번이다. 먼저 온 버스를 타는 게 국룰이다 보니 우리는 108번 버스를 탔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곳의 자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넓은 평원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일렬로 늘어선 모아이 석상이었다. 일본과 칠레의 관계로 모아이 석상이 일본에 지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런데 "왜 공원묘지에 모아이 석상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모아이 석상과 함께 눈에 띈 것은 멀리 산 꼭대기에 쌓인 눈이었다. 4월말이었지만, 홋카이도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었다. 밤마다 도시가 왜 그렇게 쌀쌀했는지 한번에 알 수 있었다. 다소 무더웠던 한국에 비해, 그래도 눈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훨씬' 더 좋아한다.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연못(오른쪽)이 보인다.


목적지였던 대불상으로 가는 길은 인공적인 연못을 돌아서 가야 한다. 곧장 갈 수도 있었지만, 둘러서 가도록 만든 동선은 부처에게 향하는 길이 조금 여유롭길 바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연못을 지나 터널에 들어서니 독특한 터널 천장이 눈에 띄었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흡사 연꽃잎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비범하고 유려한 선이 가득했다. 그렇게 도착한 불상은 꽤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 중 가장 큰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다. 콘크리트 벽 위에 페인트를 바르거나 타일로 덮는 것이 아닌 약품처리를 해서 콘크리트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이다. 이는 대불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콘크리트 조각을 쌓아올린 불상은 조각의 이음부분과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한국의 절에서 볼 수 있는 금색 칠이 된 불상도 이질적이지만, 콘크리트 불상은 그보다 더 낯설다. 


불상의 질감에 낯설어 할 때쯤 판테온 느낌의 천장에서 햇빛이 내리쬔다. 이질적인 질감으로 불상의 위엄에서 거리감을 두게 하는 공간이 빛을 만나자 종교적 가치를 갖게 한다. 다만 그 가치는 불교 고유의 것이 아니다. 불상의 불교의 질감을 온전히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불상이 갖는 가치는 불교 고유의 가치가 아니라 공간의 아름다움 그 자체로 초월적인 존재를 믿게 하는 것이다. 공간의 아름다움 자체가 초월적이라는 의미다. 이는 안도 타다오의 대표작인 빛의 교회에서도 드러난다. 안도 타다오가 직조하는 빛은 기독교와 불교를 가리지 않고 있었다. 


대불상을 떠나 잠시 휴게공간에서 쉬고 모아이 석상을 구경하며 나가기로 했다. 모아이 석상은 멀리서 바라본 것보다 더 큰 모습이었다. 길게 늘어선 석상 중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녀석은 "내가 알던 얼굴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겠다. 이 거대한 공간의 작은 유머 정도로 웃어 넘기기로 했다. 아마 나는 살면서 이스터섬에 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실제 모아이 석상의 크기는 절대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대신 이곳에 있는 5m 내외의 모아이 석상으로 이스터섬을 간접 체험한 셈 치기로 했다. 


사실상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은 꽤 복잡한 동선으로 움직였다. 오전에 마코마나이타키노레이엔을 다녀온 후 삿포로역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홋카이도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을 것 같은 관광지인 오타루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오타루를 코스에 넣느냐를 두고 고심을 했다. 홋카이도 지인은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코스니 반나절만 간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고 했다. 게다가 워낙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다녀간 장소니 더 볼 게 있을지 의문이었다. 상점들도 일찍 닫는다고 해서 점심식사 이후 서둘러 오타루로 움직이기로 했다. 

점심은 삿포로에서 유명하는 스프커리로 먹기로 했다. 현지인의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먹어야 할 건 한 번 먹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수많은 스프커리 중 삿포로역 근처에 있는 가게로 갔다. 다른 이유보다 그냥 동선에 맞아서 갔다. 일본인들은 매운 걸 못 먹을 거라는 생각에 맵기 단계를 조금 높게 설정해서 주문했다. 생각보다 매웠다. 맛있는 매운맛이 아니라 그냥 매웠다. 아마 맵기를 조금 낮췄다면 요리 본연의 맛이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삿포로 스프커리는 그냥 '먹어봤다'에 의의를 둔 요리였다. 

뭔가 제대로 된 벚꽃을 봤다.


몇몇 블로거들의 충고를 받아 미나미오타루역에 내렸다. 오타루 여행 동선은 미나미오타루역에 내려서 오르골당을 둘러보고 거리 구경을 하다 운하로 가서 걸은 다음 오타루역으로 향하는 게 좋다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철길을 따라 도착한 미나미오타루역은 작고 아담했다. 유난히 흐트러진 벚꽃이 역 입구까지 여행객들을 맞이했다. 주민들의 일상이 담긴(관광지는 아니라는 뜻) 역 앞 거리를 지나니 메르헨 교차로와 오타루 시계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꽤 흔치 않은 증기시계탑이라 증기를 내뿜는 모습을 기다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갈 길이 멀어서 그냥 오르골당 구경하고 바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오르골이 많았지만,
이런 오르골이 더 끌렸다. 그러나 비싸다.


오르골당에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오르골이 있었다. 오르골에 전혀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들이 사방에 널려있으니 정신이 없었다. 여친을 포함해 대부분 1층의 예쁜 오르골들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진짜는 2층에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은 클래식 오르골부터 초기 오디오 장비까지 오르골의 기원이 된 다양한 음향 제품들이 '전시'돼있었다. 수십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제품들인 만큼 감히 살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그저 눈으로 구경 잘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오르골당에서 딱히 구매한 건 없었다. 애초에 오르골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담스럽게 생긴 헬로키티 카페.
독특한 장소가 많았다.


오르골당을 나서자 왼쪽에 헬로키티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갈 길이 멀기도 했고 대단히 부담스러운 외관을 자랑하고 있어서 역시 들어가진 않았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니 개화기로 돌아간 것 같은 오타루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건물들은 대부분 기념품 상점이나 식당, 카페가 돼있었다. 건물들의 개성에 비하면 상점의 개성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이 거리에서 가장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르타오'가 눈에 들어왔다. 빵집이라고 하는데 너무 흔하다보니 딱히 먹어볼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돌아가는 공항 면세점에서도 르타오는 굉장한 위엄을 드러냈다. 

오타루스러운 풍경.


거리를 지나 영화에서나 자주 봤던 운하에 도착했다. "일본에 놀러왔다"는 감성에 취해 운하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생각보다 두고 볼만한 관광코스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오타루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각잡고 둘러봤다면 카페나 맛집, 시장(오타루역 바로 옆에 있는 삼각시장은 이미 가게들이 다 닫은 관계로 입구만 구경했다) 등 둘러볼 곳이 많았겠지만, 이미 다른 곳을 충분히 경험하고 온 만큼 후회하진 않는다. 뭐, 언젠가 또 갈 일이 있겠지. 

지도 찾아보다가 신기했던 일본식 노래방. 한국의 데몰리션 노래방을 연상시킨다.


밤이 돼서야 삿포로에 돌아왔다. 저녁으로 뭘 먹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전날 실패했던 '아가씨'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사장님이 연휴인지 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마지막 밤을 제대로 보내려면 스스키노로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삿포로역에서 스스키노로 가는 길은 지하로 걸어가보기로 했다. 삿포로의 밤이 꽤 쌀쌀하기도 했고, 그 유명한 삿포로 지하도 구경해보고 싶었다(삿포로는 워낙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겨울철 보행자 이동을 위해 지하도를 넓게 뚫어놨다). 나는 인천의 부평지하상가를 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래된 지하상가인 점을 고려하면 꽤 좁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에 비하면 삿포로 지하도는 넓고 반듯했다. 도로의 반듯한 모양을 그대로 닮은 듯 했다. 삿포로와 인천을 비교하는 게 맞는지 잠시 생각해봤다. 그러나 하코다테 카네모리 아카렌가 창고도 "인천 개항장 같다"라고 생각했으니 어느 정도는 해볼만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인천일까? 

시간여행을 떠난 것 같은 야키니쿠집이라 사진도 흑백으로 만들어봤다.


스스키노에 도착해서 다시 '아가씨'를 찾아갔다. 여전히 음침한 골목길은 위엄이 넘친다. 그리고 마침내 가게에 불이 켜져있는 걸 발견했다. 반가워서 가게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오래전 할머니집의 나무문을 여는 것처럼 뻑뻑했다. 결국 주방에서 신문을 보던 늙은 사장님이 직접 열어주셨다. 우리가 처음 가게에 들어갔을 때 사장님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그 표정은 마치 "뭐야, 왜 손님이 왔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가게 위치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골목길에 있었다. 이 가게를 추천해준 지인은 '관광객이라면 절대 안 갈 집'이라고 소개했다. 그 말은 정확했다. 음침한 골목길에 위치한 가게는 오래전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가게의 연혁은 확인할 수 없지만, 가게에 들어서자 50년전 일본 도심의 작은 야키니쿠집으로 소환된 것 같았다. 

왼쪽이 둘이서 다 비운 술이다.
여러 고기를 먹었다.


일본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나 대신 여친이 주문했다. 고기와 함께 유명한 고구마소주 1병을 주문했다. 일본술 치고는 도수가 좀 높은 술이었다. 그 술을 주문하자 사장님은 "진짜 그걸 다 먹을거야?"라는 표정으로 재차 주문사항을 확인했다. 정확히 뭘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설도 있었던 것 같고 대창도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먹은 고기가 조금 짰지만, 대체로 맛이 있었다. 그런데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나온 모츠나베였다. 모츠나베는 여친이 워낙 좋아해서 한국에서도 종종 먹었다. 돈돈정이나 야마야에서 먹은 모츠나베는 맑고 감칠맛이 도는 국물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집의 모츠나베는 뚝배기에 담겨져 나온 빨간 국물이었다. 안에는 순두부와 고기도 조금 들어있었다. 정확히는 '순두부곱창뚝배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처음 본 모츠나베의 맛은 더 특이했다. 단순히 얼큰칼칼한 뚝배기 국물요리를 예상했지만, 강한 참기름맛이 올라왔다. 참기름과 얼큰한 국물의 조화가 나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요리지만, 양국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맛이었다. 

듣도보도 못한 모츠나베.


'아가씨'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나나 여친이나 서울에서도 노포맛집 가는 걸 좋아해서 특히 더 만족했다. 정말 관광객이 여기를 갈 지 모르겠다. 좁고 지저분한 가게다. 꾸역꾸역 앉아도 6명이면 가게가 꽉 찬다. 위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관광객이라면 이 가게는 비추천한다. 그러나 위생보다 감성과 맛을 생각한다면 가보는 것도 좋다. 

삿포로의 밤.



'아가씨'에서 거하게 취한 우리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TV타워로 가기로 했다. 그렇게 놀고 술을 마셨는데도 오도리공원에 도착하니 9시였다. TV타워가 문을 닫기까지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여행을 왔는데 그래도 야경 정도는 봐야 하지 않겠는가. TV타워는 꽤 오래되고 좁은 공간이었다. 1층에는 여러 상점가나 오락실이 있었지만, 그걸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좁은 전망대로 올라서자 반듯한 삿포로 도심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의 모든 도시들이 이렇게 반듯한지는 모르겠다. 삿포로는 마치 분당과 서울을 섞은 것처럼 반듯했다. 일본여행을 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 중 하나가 대단지 아파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단지 아파트가 도시를 얼마나 재미없게 만드는지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마을과 도심을 둘러보고 나니 대단지 아파트는 그야말로 '노잼의 산물'이었다. 

재미있는 야경을 구경하던 중 전망대 한쪽에 위치한 스티커 사진기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피사체를 지나치게 왜곡한다는' 일본의 스티커 사진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기념삼아 둘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역시 예상대로 왜곡은 대단히 심했다. 그런데 기대한 만큼의 왜곡은 아니었다. 거의 만화 수준으로 인물을 왜곡시키는 사진기가 아니라 섭섭했지만, 그래도 시계탑과 야경을 배경에 두고 찍은 사진은 매력적이다. 사진은 지갑에서 잘 지내고 있다. 

겨우 밤 10시였지만, 거리는 한산했다. 차도 없었다.


홋카이도에서의 마지막 밤도 숙소에서 가벼운 맥주로 마무리했다. 흔히 일본여행가면 일평균 2만보 이상은 걷는다는데 우리는 1만보 이상 걸었다. 많이 안 걸은 편이고 한국인도 많이 안 만난 편이라고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즐거웠던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