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기획

불닭국밥의 '2022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불닭국밥 2022. 11. 22. 13:24

'어나더 라운드'
- 술과 춤이 어우러진 굿판이 벌어진다. 마치 한많은 세상 취해서 춤이나 추자며 놀아대는 이 아저씨는 의외로 북유럽 사람이다. 한국인의 정서인 것처럼 느껴졌던 한(恨)과 흥(興)이 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사람에게서도 느껴진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가. 술 때문에 꼬여버린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술 자체, 혹은 술을 마시려는 의지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술에서 흥을 찾는 그 정서를 바라보고 위로한다. 술이 무슨 잘못인가. 술을 마시고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잘못이고 그 감정을 이끌어 낸 주변을 원망하다보면 결국 원인은 본인에게로 돌아온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 땡기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술 마시고 사고는 치지 말자. 한 많은 흥을 토해내는 일은 신나기보다는 슬프고 처연하다. 

'레벤느망'
- 프랑스의 젊은 여성감독이 생각하는 출산은 이미 '티탄'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레벤느망'은 티탄과 다른 맥락으로, 더 건조하게 출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과정이 아름다운 것은 오래된 성교육 교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임신과 육아는 실전이다. 특히 미혼모라면 그것은 난이도를 '나이트메어'로 끌어올린 인생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더해 '레벤느망'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68혁명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과 환희가 교차한다. 불안한 시대에 이 미혼모는 마치 혁명을 하듯 낙태를 준비한다. '낙태의 혁명'은 아직 온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레벤느망'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진행형의 혁명이다. 

'우연과 상상'
- 3개의 파편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하나의 영화처럼 유기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이 유기적인 이야기는 좌절과 불안을 넘어 희망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도쿄의 불안한 청춘들을 지나 센다이에 이르면 우연이 만든 불안들은 희망으로 바뀐다. 후쿠시마와 인접한 도시에서 이 영화는 '밝은 우연'을 말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는 사적이다. 자신의 주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가운데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준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는 일은 한 사람의 내면에 형성된 구조와 그 소재를 들여다 보는 일과 같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온갖 표현법을 영화에 적용한다. '우연과 상상'은 그 유기적인 표현법이 가장 활발하게 쓰인 영화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 중 가장 기술적이라는 의미다. 

'헤어질 결심'
- 기이한 세계에서 애절한 사랑이 피어난다. 사실 '박찬욱표 멜로영화'는 '아가씨'로 정의내려도 부족하지 않다. '헤어질 결심'은 '아가씨'의 멜로와 섹슈얼리티를 그대로 계승한다. 그러면서 멜로는 더 정통성을 갖게 되고 섹슈얼리티는 수면 아래로 숨어버린다. 30~40년대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전통을 계승하는 듯 하지만, 그 가운데 박찬욱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헤어질 결심'은 그 자체로 영화적인 즐거움이다. '영화광' 박찬욱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이야기는 더 탄탄해졌다. 감히 이 영화는 올해 한국영화 중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정의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올해 한국영화 중 제일 재미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체해부도'
-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이다. 타인과의 관계나 불완전한 삶을 완성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피로가 돼서 육체를 지배하는 수준이다. 삶이 지치고 고민스러울 때 '인체해부도'는 꽤 명쾌한 해답을 준다. 이 영화는 초소형 카메라를 들고 파리 공공의료원의 여러 일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재왕절개 수술과 노인병동의 이미지가 남으면서 그 가운데 여러 수술장면이 등장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삶이 있다. 그 삶에는 관계를 이루고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몸'이다. 탄생에서 죽음까지 향하는 것은 오직 몸밖에 없다. 정신을 담는 그릇이 되는 몸만이 삶의 모든 순간을 온전히 함께 한다. 오래전 봤던 한국영화 '아워바디'처럼 이 영화는 온전히 '몸'만 남게 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워바디'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환장할 것 같은 멀티버스는 현재의 가치에 충실한 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 강아지를 키운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말 중에 "유기견 하나 입양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는다. 그러나 그 유기견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이민자이자 소소한 개인인 에블린에게 찾아온 멀티버스는 그녀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소소한 개인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에서는 내가 중심이고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에블린이 눈 앞의 가치에 충실하려는 것은 어떤 삶을 살더라도 거기에 충실해야 하는 게 옳은 길임을 보여준다. 세상의 중심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각자니깐. 

'탑'
- 올해 나는 3개의 멀티버스 영화를 봤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홍상수 감독의 '탑'이다. 홍상수의 자의식과 영화를 떼어놓고 보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다가 거의 포기해버린 요즘, 다시 한 번 대놓고 '홍상수의 페르소나'같은 캐릭터가 등장한다. 탑(이라고 부르고 건물) 안에서 그는 여러 선택을 하며 다른 삶을 산다. 초창기 홍상수 영화처럼 여러 여자들을 거쳐가고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끝내 이 사람은 외롭다. 아니, 어쩌면 외로운 꿈을 꾼 것일까? 꿈과 현실을 오갔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홍상수의 다른 선택들에 따른 망상에 더 가깝다. 결국 그게 멀티버스가 아니던가. 

'EO'
-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당나귀 '이오'(EO)다. 이오를 따라 로드무비처럼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사건이 등장한다. 이 당나귀가 바라보는 인간들은 선하다가도 악하다. 여러 갈등이 있고 그 가운데 번뇌한다. 복잡한 인간사를 바라본 이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나귀니깐 당연히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 관객들은 인간군상들을 바라보는 이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렇게 이오가 어떤 결론을 내주길 바라며 이야기를 쫓을 때쯤, 관객들은 끝에 가서 한가지를 깨닫는다. 아차, 이오는 당나귀였지. 사람이 될 수 없었던, 인간보다 먹이사슬의 아랫단계에 위치한 당나귀. 내내 이오에게 이입했던 관객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현실로 돌아온다. 평범했던 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너와 나'
- 낮잠에서 덜 깬 소녀의 시선처럼 영화는 희뿌옇다. 꿈처럼 아른거리는 모습들이 영화를 수놓는다. 그러다 지나치게 노골적인 메타포들을 마주할 때, 꿈의 실체가 드러난다. 아이들이 원했던, 그러나 이룰 수 없었던 꿈. 체념하기엔 이미 먼 길을 지나왔다. 돌이킬 수도 없다. "다녀오겠다"는 친구의 약속은 지킬 수 없는 것이 돼버렸다. '너와 나'는 파편같은 꿈들이 흘러가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 이야기는 가슴아프고 여전히 고통스럽다. 차라리 그 낮잠에서 깨지 않는 게 다행일까? 꿈 속에서는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테지. 

'UFO를 찾아서'
- '서유기'를 기반으로 UFO 이야기를 끼얹었다. 이 이상한 로드무비는 어느 밑바닥 인생들의 망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꿈을 꾸길,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정을 떠난다. 우주 안에서 그 바램은 대단히 초라하고 작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바램 하나하나 모여서 우주가 완성된다. 이 영화가 '서유기'를 빌려서 UFO 이야기를 하고 결국 우주와 개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유: 도구로서 개인이 아닌 개인 그 자체로 여정을 떠난 친구들처럼, 개인 하나하나가 우주에 맞설 수 있는 '작은 우주'가 된다. 'UFO를 찾아서'는 범우주적인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정신없는 개인이라도 그들 각자는 우주 안에서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아깝게 밀려난 영화]]]
'플랜75'
'탑건: 매버릭'
'썸머 필름을 타고'
'멘'
'놉'
'애프터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