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1편이 개봉하고 13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는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인피니티 사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며 할리우드의 대표 프렌차이즈가 됐다. 그 사이 중국은 거대 자본을 쏟아부어 할리우드를 견제할 자신들만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그런 선전·선동영화로 자국 내에서만 대접받는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산업의 주류는 극장에서 OTT로 이동할 뻔 했다. 몇 가지 영화들은 극장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보여줬지만, 여전히 자본과 인프라가 OTT 드라마로 향하고 있는 건 부정하기 어려웠다. '아바타' 1편이 개봉한 후 2022년 2편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하기까지 13년 동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무런 작품도 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바타'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아바타'를 만들면서 할리우드 프렌차이즈가 변하고 있음을, 영화 산업의 주류가 바뀌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그에 따라 영화판이 변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그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극장으로 향해야하고, 제 아무리 프렌차이즈 블록버스터 영화라도 시간과 정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아바타: 물의 길'('아바타2')은 영화가 극장으로 향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했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드는 일은 노력과 정성, 그것을 가능하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증명했다.
'아바타2'는 1편 이후의 시간을 요약하면서 시작한다. 제이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는 부부가 됐고 아이들을 낳았다. 자신들의 아이들인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과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트리니티 조-리 블리스) 외에 박사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너무 어려서 판도라 행성을 떠나지 못한 인간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온)까지 가족의 구성원이 됐다. 이들은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지만, '하늘의 사람들'(지구인)이 판도라 행성으로 돌아오면서 평화가 깨졌다. 이들은 광물채집에서 벗어나 판도라 행성 전체를 테라포밍 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일으켰던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없애야 한다. 나비족으로 다시 태어난 쿼리치(스티븐 랭)와 그의 해병대 병사들은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잡기 위해 잠입한다. 쿼리치의 일당과 전투를 한 제이크는 부족을 지키기 위해 족장 자리를 내려놓고 가족들과 숲을 떠나기로 한다. 그리고 이들은 바다 부족의 마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아바타2'는 익숙한 숲을 벗어나 바다로 향한다. 관객들은 판도라 행성의 숲이 등장하자마자 반가웠을 것이다. 1편의 팬들은 무려 13년 동안 기다린 숲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 숲과는 짧은 만남을 가지고 이별해야 한다. 이후 숲은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제이크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관객들 역시 전학생의 심정으로 바다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바다의 풍경에 적응하게 된다면, 이곳은 숲속 그 이상의 놀라움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제임스 카메론은 스스로를 '영화감독 겸 탐험가'라고 소개할 정도로 바다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다. 이 때문에 '아바타2'가 보여주는 바다의 풍경과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전작보다 더 진하게 느껴진다. 그 증거는 '아바타2'에서 처음으로 동물의 감정에 이입한 데 있다. 전작에서 드러난 나비족의 특징은 머리의 촉수를 통해 동식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작의 주요 탈 것인 '이크란'을 타는데 유용하게 쓰인다. 다만 전작에서 이크란은 '탈 것'의 역할을 했을 뿐 이야기를 이끄는 캐릭터로 비중을 갖진 않는다. 반면 '아바타2'의 고래를 연상시키는 '툴쿤족'이 등장한다. 이들은 별도의 대사를 하진 않지만, 나비족들과 교감하며 이야기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비족과 동물의 교감이 전작보다 더 진하게 드러난 셈이다.
'아바타'에서 놀라웠던 점들 중 하나는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를 온전히 상상력만으로 창조했다는 점이다. 동식물의 디자인부터 나비족의 문화까지 전부 감독의 상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아바타2'의 툴쿤족을 보고서야 그 상상의 모티브가 지구라는 걸 알았다. '아바타'가 개봉했던 2009년에는 또 다른 SF 걸작인 '디스트릭트9'이 개봉했다. 두 영화는 모두 인간과 외계인에 대한 일반적인 관계를 역전시킨 작품이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고 인간과 전쟁을 벌인다는 일반적인 SF영화와 달리 두 영화에서는 인간이 외계인을 괴롭히는 이야기다. 지금이야 NASA가 외계인을 감금해서 고문하고 기술을 빼낸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하지만, 13년전에는 비교적 신선한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극적 재미를 위한 것인 줄 알았다. 판도라 행성을 찾아온 인간들이 두 번이나 같은 짓을 하는 걸 보고서야 '아바타'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관찰보고서라는 걸 알게됐다. 그것은 단지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민족의 문화를 파괴하고 생명을 해치는 일에 이른다. 마치 베트남전에 참전한 연합군의 만행을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아바타2'는 극적으로 전작보다 더 발전했다. 여기에는 '아버지'가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한다.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엄하게 대하는 아버지(제이크),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 아버지임을 애써 부정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전투가 이어지고 그것이 아이들에게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건 2편을 넘어 3편까지 끌고 가려는 핵심 화두다. 그리고 여기에는 '기가 쎈 여인'으로 등장하는 어머니 네이티리와 로날(케이트 윈슬렛)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의 정체성을 하나하나 파헤치는 '가족영화'다. 가족주의가 강한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족에 대해 해부하는 이야기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아바타2'는 그 어떤 영화보다 진지하고 세세하게 가족에 대해 해체하고 분석한다. 아버지의 고뇌와 어머니의 욕망, 형제의 갈등과 화해를 고스란히 이야기에 투영해 거대한 가족 서사시를 완성한다(물론 이 서사시는 3편으로 이어진다).
제임스 카메론은 2편에 유난히 강한 사람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부터 죠 단테의 '식인어 피라냐' 속편으로 데뷔했고 그를 성공으로 이끈 영화는 '터미네이터2'다. 그 사이에 '람보2'의 시나리오를 썼고 '에이리언2'도 성공시켰다. 확실한 것은 제임스 카메론에게 속편의 징크스는 통하지 않는다. '아바타2'는 그가 '터미네이터2' 이후 30여년만에 내놓은 두 번째 영화다. '아바타2'의 시각적 성취는 전작을 넘어서고 이야기는 전작보다 더 깊어졌다. 이 사람에게 확실히 속편의 징크스는 통하지 않는다. 다만 클라이막스의 전투씬이 전편만큼 박력이 넘치진 않는다. 해상에서 벌어지는 전투씬은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이지만, '에이와'가 도와주신 전편의 카타르시스를 따르기에는 역부족이다. 마치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속 헬름협곡의 전투처럼 밀도있고 역동적이지만, 스케일이 크지는 않다. 관객의 기호에 따라 이는 다소 아쉽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등장한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처럼 '아바타3'에서는 엄청난 스케일의 전투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미 '아바타2'에서는 다음 전투에 대한 힌트가 될 장소가 등장한다. 이것은 3편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중요한 대목이다.
'아바타2'는 슈퍼히어로 영화와 OTT에 집착하던 할리우드가 잊고 지낸 한가지를 일깨워준다.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장인정신'이다. 소위 성공한 영화감독들은 현장에서 험악하기로 유명하다. 스탭들이나 배우들과 관계가 좋지 않고 고집불통에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영화감독으로는 성공한다. 이는 꽤 확실한 불문율이다. 제임스 카메론도 만만치 않게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아바타2'가 나오기까지 10여년의 시간이 걸린 것도 결국 그 '장인정신' 때문이다. 어느 순간 영화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돼버렸다. MCU는 앞으로 수년동안 납기일을 맞춰놓고 거기에 맞춰 물건을 찍어낸다. 이미 그게 익숙해진 시대에서 제임스 카메론은 10년 넘게 묵혀놓을 수 있는, 그래야만 하는 장인정신을 보여준다. 제임스 카메론은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숏폼 콘텐츠 시대에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고집한 계기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같은 값 내고 길게 보면 좋은 거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타협없는 러닝타임과, 그것을 고집할 수 있었던 이유도 장인정신과 이야기, 비주얼에 대한 자신감이다. '아바타2'는 노년의 거장이 가진 자신감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산물은 이제 막 시작했다.
여전히 극장이 영화감상의 핵심이 되는 이유는 톰 크루즈, 제임스 카메론, 조지 밀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상업영화의 영역에서 '장인정신'을 발휘한다는 데 있다.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들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통해 커리어를 쌓는다. 그리고 그들도 결국 숏폼 컨텐츠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과연 우리 시대에 고집불통, 장인정신을 가진 작가는 존재할까? 그리고 그런 작가가 만든 영화를 숏폼 컨텐츠 시대의 관객은 온전히 소비할까? '아바타2'와 '탑건: 매버릭',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영화 깎는 장인을 발굴하는 데 초석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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