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동감'은 2000년 5월에 개봉했다. 정확히 그걸 극장에서 봤는지 비디오로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시기였고 '인생에서 가장 많은 술을 마셨던 해'라고 회상하던 때였으니 아마도 나중에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보지 않았을까 추정해본다. HAM이라는 무선통신으로 1979년과 2000년이 연결됐다는 설정은 대단히 신선했다. 영화가 묘사하는 1979년과 2000년은 지금 돌이켜보면 꽤 전형적이었지만, 다른 시대가 연결됐다는 설정은 신선한 시너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런 '동감'이 2022년에 다시 돌아왔다. '과거'였던 1979년은 1999년이 됐고 2000년이었던 현재는 2022년이 됐다. 이야기는 원작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가 교감했고 그로 인한 여러 사건들이 벌어진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거의 사람은 여자에서 남자로, 현재의 사람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현재였던 1999년(2000년)은 과거가 됐다.
2000년에 '동감'을 봤던 나에게, 그 시대는 온전히 '현재'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현재는 과거가 됐다. 특별할 것 없는 이 영화에서 나는 현재가 과거가 되는 경험을 했다. 이것은 꽤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7080 가요방'이 '8090 가요방'으로 바뀌는 경험은 그리 특별하게 와닿지 않는다. "레트로 패션이 돌아왔다"며 간간히 보이는 힙합바지는 좀 신기하게 보일 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를 보면서도 1999년을 온전히 과거로 인식하진 않았다(영화 속 시대배경이 피부로 와닿지는 않았다). 심지어 '서울대작전'의 1988년은 "다른 유니버스의 1988년인가"라고 생각할 정도였다(1988년에는 부산에 있었다. 너무 어려서 세상이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속 1999년은 대체로 낯설었다. 그런데 '동감'이 묘사하는 1999년은 유난히 다르게 느껴진다.
이것은 '동감'(2022)이 1999년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20세기 소녀'보다는 피부로 와닿는 1999년이었지만, "그땐 그랬지"라고 추억하기에는 영화가 시대묘사에 그리 치중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1999년에서 2022년에 이르는 사이에 변한 게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2000년 '동감'에서 묘사한 두 시대의 차이는 극명하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의 풍경을 담은 1979년에서 2000년에 이르면 대학생들은 좀 더 자유롭다. 당연히 IMF 이후의 불안이 팽배했고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공존했다. 그러나 비교적 조심스러웠던, 혹은 상업영화가 되길 바랬던 2000년 '동감'은 현재의 시대묘사에 그리 집중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2022년 '동감'은 시대묘사에 꽤 솔직하다. 2000년 '동감'과 달리 과거의 남자인 김용(여진구)이 기계과, 현재의 여자인 김무늬(조이현)가 사회학과로 설정된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한국경제에 거품이 빠진 시기인 1999년의 대학생들은 진로를 걱정한다. 종말론을 주장하던 학생은 그런 불안이 유치하게 드러난 상징과 같다. 적당한 길만 쫓아가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IMF 이전과 달리 공대를 졸업해도 딱히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대학의 전공은 과거와 다른 의미로 '의미가 없다'. 김용은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 영화는 서서히 그 이유를 드러낸다. 2022년의 김무늬는 사랑의 감정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마치 사랑을 쫓는 것이 사치인 것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김용과 김무늬의 고민은 꽤 닮아있다. 군부독재 시대와 새로운 세기와 교감을 다룬 과거의 '동감'과 비교하면 시대의 차이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 때문에 2022년 '동감'은 개인의 보편적 고민에 집중한다. 대학을 다니지만, 비전을 갖지 못하는 김용과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서 낭만을 갈망하는 무늬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의 교감을 더 극대화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시대에 따라 청춘들의 고민이 변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1979년과 2000년이 다르고 1999년과 2022년이 다른 것처럼, 2000년의 영화와 2022년의 영화도 시대를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을 관통한 '오래된 세대'인 나는 조금 당황스럽다. 무엇보다 '동감' 덕분에 내가 겪었던 현재가 과거가 되는 체험을 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온전히 그것을 체험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꼬마였던 3인방이 '죽음의 성물 2부'에서 어른이 된 걸 목격했을 때 시간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온전히 그들의 시간이었다. "세월은 나만 쳐맞지"라는 자조적인 한탄은 그저 농담일 뿐이다. 리메이크된 '동감'이 체감하게 해주는 것은 "당신이 겪은 현재는 과거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릴 때 즐겨듣던 노래가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과 다르다. 조금은 소름돋고 오싹한 경험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을 뼈마디 사이사이로 체감하는 게 긍정적인 일인지 모르겠다.
'동감'을 보면서 느꼈던 불편한 체념을 뒤로 한다면 영화는 성공적인 리메이크다. 2000년 '동감'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외한다면 웰메이드 멜로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엄밀히 따지자면 '동감'은 1990년대 후반부까지 이어졌던 멜로영화 신드롬의 붐을 타고 등장한 영화다. 그 시절 대표 멜로영화였던 '편지', '약속', '접속' 등에 비하면 묵직한 매력은 오히려 덜했다. 2003년 한국영화 르네상스 이후 멜로영화의 시대가 끝났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혹자들은 "왜 지금 '동감'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2022년의 '동감'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절절히 애를 쓴다. 디지털 사회에서 잃어버리고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노력이 관객들에게 닿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멜로영화라는 장르는 HAM 무전기만큼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대 관객들에게 어떻게 가서 닿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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