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넷플릭스 'D.P' 시즌2 프레스 스크리닝으로 4화까지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
군대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보병으로 복무하거나 포병 등 전투병과에서 군복무를 한다. 그 가운데 누군가는 다소 낯선 보직에서 군복무를 하기도 한다. 이는 전투지원병과인 공병이나 행정병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낯선 보직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테니스장 관리병이나 CP병, 군 전용 콘도 관리병도 존재한다. 당장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군단지원병원에서 작전보안병으로 복무했다. 보병, 포병으로 복무한 친구들은 군 병원에 간 나를 신기하게 보기도 했다. 김보통 작가가 했다는 'D.P' 역시 처음 보는 보직이다. 탈영병 체포조라는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이 일을 병사에게 시킨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기무사에서 사고사례를 받을 때 탈영병 소식을 들으면 오대기 같은 체포조가 가서 사살하는 줄 알았다(당시는 무장탈영이라 무장 체포조가 움직였다).
D.P병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바로 직후 공개된 '오징어 게임'의 후광에 가려졌지만, 꽤 걸작 드라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D.P'의 특성상 여러 이야기를 드라마에 녹여내기 좋았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수많은 예비역들이 'D.P' 속 여러 사연들에 고구마를 삼킨 듯 답답해하며 공감했다. 'D.P'의 시즌2는 전편의 공감대를 조금 내려놓는다. 전 시즌에 공감했던 예비역들과 달리 미필자와 여성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들이 꽤 많았다. 시즌1은 정해인의 미모와 구교환의 발랄함, 손석구의 능청스러움, 현봉식의 귀여움으로 젊은 여성시청자들의 안구를 정화시켰지만, 그것만으로는 시청자들을 오래 붙들어두기 어렵다. 그래서 시즌2는 갈등구조를 키우고 극적 효과를 강화시킨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시즌2는 이전 시즌 이후 인물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시즌1의 마지막이 그리 긍정적으로 끝나지 않았던 만큼 시즌2에서 주인공들 역시 그리 긍정적인 현재를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박범구 중사(김성균)는 조석봉(조현철) 사건으로 군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고 임지섭 대위(손석구) 역시 군 검찰에서 보직 대기 중이다. 한호열 병장(구교환)은 트라우마로 다시 군병원에 입실했다. 그리고 안준호 일병(정해인)은 중대의 새로운 타겟이 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사실상 D.P가 해체됐고 내무생활 중인 안준호는 이전부터 소위 '찍힌' 상태였다(군대에서는 혜택을 받는 보직에 있는 낮은 계급은 찍히기 마련이다. 전령병을 겸했던 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이전부터 안준호를 벼르고 있던 고참들은 안준호에게 온갖 태클을 걸어 괴롭힌다. 시작부터 안준호는 마치 시한폭탄처럼 보인다.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이들의 처지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더 큰 고난은 시즌1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시즌1을 본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조석봉의 친구 김루리(문상훈)가 고참들의 괴롭힘에 총기난사를 하는 장면이다. 김루리 일병의 총기난사로 2명이 죽고 10여명이 다쳤다. 그리고 김루리 일병은 그대로 탈영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군 복무 시절 타 사단에서 무장탈영 사고사례를 들었던 입장에서는 김루리의 사례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큰 일이다(실제 사고사례 전파로 들었던 무장탈영병은 소총 1정과 공포탄 6발을 가지고 탈영했다. 그럼에도 그는 야산에서 자살했다. 그러나 당시 병사들에게는 그 탈영병이 사살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무시무시한 사례 앞에 D.P조는 다시 소집된다. 박 중사와 한호열, 안준호는 김루리를 만났던 입장으로 그들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중무장한 군 체포 전담반과 별개로 김루리 일병을 무사히 데려오기 위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D.P' 시즌2는 새로운 인물을 소개한다. 국군본부(원래는 육군본부지만, 드라마인 만큼 가상의 조직을 내세운 듯 하다) 체포팀을 이끄는 서은 중령(김지현)과 그의 상관인 법무실장 구자운 준장(지진희)이다. 이들은 이미 예고편 단계에서부터 소개된 캐릭터다. 이들 외에 'D.P' 시즌2는 숨겨진 캐릭터 오민우 준위(정석용)가 있다. 군 수사담당관인 오 준위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액션연기로 초반부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구자운과 오민우로 구성된 빌런 조합은 이전 시즌에서 황장수(신승호)의 역할을 대신한다. 황장수는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빌런으로 조석봉의 탈영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시즌1에서는 병장 계급이었던 빌런이 시즌2에서는 준장(원스타)과 준위(부사관 중 최고 계급)가 됐다. 시즌2의 스케일이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빌런들은 군 조직이 아무 일 없이 유지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군내 부조리가 외부로 세어나가는 일을 막아야 하고 만에 하나 일어난 부조리는 최대한 조용하게 막아야 한다.
부조리를 묻어두기 위해 어떤 희생도 서슴치 않는 빌런 조합과 병사들을 무사히 데려오는데 집중하는 주인공 사이의 갈등은 시즌2의 핵심이다. 이처럼 대립구도가 명확해지면서 시즌2는 더 큰 극적 재미를 기대하게 만든다. 이는 시즌1에서 군대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미필자들과 여성 시청자들까지 재미를 느낄만한 대목이다. 시즌2의 초반부는 이런 갈등관계를 드러내는데 김루리 무장탈영 사건을 활용한다. 이 사건에는 꽤 많은 명장면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김루리 일병의 어머니(황정민, 동명이인의 여배우)와 김루리 일병의 총기난사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마주하는 장면이다. 피해자의 어머니와 가해자의 어머니가 명확하게 갈라질 수 있지만, 드라마는 내리는 비와 표정연기를 통해 두 사람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마치 둘 모두를 같은 피해자처럼 담아낸다. 군대 내의 부조리(괴롭힘마저도)에 대해 드라마는 병사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는다. 특수하고 폐쇄적인 군 조직 그 자체에 책임을 돌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 구자운, 오민우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 굵직한 사건은 2화까지 이어진다. 이번 스크리닝으로 4화까지 봤지만, 5~6화에서 이 갈등은 다시 한 번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3화부터는 다시 탈영병을 잡는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는 독립적인 에피소드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이전 에피소드들과 연결고리를 가진다. 특히 시즌1에서 한호열이 왜 군병원에 있었는지, 앞으로 본격적인 역할을 할 빌런 조합이 어떤 영향력을 보여주는지 등장한다. 시즌2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즌1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더하자면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읽고 보는 걸 추천한다(나는 이순재 선생님이 연출한 연극으로 봤다). 3~4화의 에피소드는 장르성이 꽤 강하다. 코미디와 스릴러, 떄로는 공포영화까지 연상시킨다. 이 역시 연출자가 예비역들의 공감대를 조금 내려놓고 장르적 재미를 찾으려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도들이 즉흥적인 공감은 오히려 반감시킨다. 그러나 큰 범주로 향한다면 시즌2는 우리가 복무했던 군대가 왜 그렇게 부조리했고, 그 부조리들이 수십년간 이어질 수 있었는지 보여준다.
시즌2는 전작과 다른 결을 가지지만, 재미만큼은 여전히 훌륭하다. 특히 이야기의 재미는 전작보다 더 훌륭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황정민, 문상훈, 배나라, 정석용, 최현욱 등의 연기도 튼튼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시즌2의 1화는 마치 고구마에 모래를 말아서 먹는 것처럼 답답하고 아프기까지 하다. 예비역들이라면 1화의 PTSD를 극복하는 것도 관건일 듯 하다. 무엇보다 황장수, 류이강(홍경) 없는 내무반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즌2를 절망 속에서 시작하게 한다. 어쩌면 그 절망은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주인공은 아직 전역하지 않았고 일병 '나부랭이'이기 떄문이다. 어서 시즌2의 5~6화가 보고 싶다. 거기에는 '사이다' 1병 정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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