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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 '거미집' - 70년대에 바침

불닭국밥 2023. 9. 28. 00:56

소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2003년 이후, 영화의 표현은 한결 자유로워졌다. 2003년 이전, 그러니깐 1990년대 한국영화는 이른바 트렌드에 쫓기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다. 조폭 코미디나 화장실 코미디, 혹은 패배주의에 찌든 조폭액션영화, 어느 장르 하나가 유행하면 귀신처럼 그 장르의 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한국영화 태동기에 공장에서 양산하듯 영화를 찍어대는 제작자, 투자자들의 정서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다. 한 예로 그 시절 수요가 가장 확실한 비디오용 에로영화들은 '007' 수준으로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애마부인'만 해도 13편까지 나올 정도였다. 19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등장했던 '1세대 씨네필 출신 영화감독'들은 공교롭게도 2003년이 돼서야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은 그 해에 '살인의 추억'을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을 만들었다. 이들 세 사람은 현재 한국영화계 최강의 친목모임 '자랑과 험담'의 주축 멤버다(영화모임인데 모이면 영화는 안보고 자랑하거나 험담하기 바빴다고). '자랑과 험담'은 과거 1세대 씨네필들이 주축이 된 모임으로 세 사람 외에 임필성, 장준환, 류승완 등이 멤버다. 현재는 이경미, 김지용, 모그, 김종관 등도 합류해서 그냥 거대한 친목모임이 됐다.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이 모임의 멤버들 중 김지운 감독과 류승완 감독은 올해 여름과 가을에 작품을 내놨다. 두 작품의 기획과 촬영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그래봤자 1~2년 차이다. 기획과 촬영 시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들이 만든 '밀수'와 '거미집'이 공교롭게도 19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었던 시기에 날개를 달았던 감독들이 1970년대로 시선을 돌렸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강남1970'이나 '말죽거리 잔혹사',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들' 등이 1970년대를 다뤘다. 시대배경이 광범위한 '국제시장'에도 1970년대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밀수'와 '거미집'도 1970년대가 배경인 영화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은 이전의 1970년대 배경 영화들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알아보는 일은 2023년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는 1970년대 가상의 도시 군천을 배경으로 한다. 해안도시인 군천의 주민들은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갔으나 인근에 화학공장이 들어서고 수질이 나빠지면서 생업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때 브로커가 해녀에게 밀수일을 권하게 되고 이들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밀수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영화감독 김열(송강호)이 악몽에서 깨면서 시작한다. '그저 그런 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듣던 김열은 마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시나리오를 고쳐 재촬영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갑작스런 재촬영 추진은 쉽지 않고 급하게 마련한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김열은 이 난장판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 이 영화에는 그의 커리어와 인생이 걸려있다. 

'밀수'의 진숙(염정아)과 춘자(김혜수), '거미집'의 김열에게는 지금 '눈 앞의 문제'만이 있다. 이들은 혼란스런 1970년대 한복판에서 살고 있지만, 시대에 휩쓸리지 않는다. '강남1970'의 청년들은 거대 조직과 정치의 시스템 안에서 휘둘렸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주인공들은 당시의 교육 시스템에 휘둘렸다. 그 외에 정치권이 배경이 된 영화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시대에 휩쓸리는 개인이 등장한다. 영화가 1970년대를 이야기하면서 시대적 배경을 빼놓기는 쉽지 않다. 군부독재의 영향력이 강했고 그 아래서 억눌린 개인들은 저항하거나 휩쓸리는 길밖에 없었다. 소위 '7080'이라 불리는 시대를 이야기할 때는 거대권력이나 시스템에 휩쓸리는 개인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실제 시대였고 그 이야기만이 관객에게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영화에까지 '시대에 휩쓸리는 개인'의 이야기는 통했다. 그런데 '밀수'와 '거미집'은 시대를 지배한 거대권력에 저항하다 휩쓸리는 개인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 영화 속 주인공은 눈 앞의 난제에 저항한다. 이는 '밀수', '거미집'이 이전의 영화들과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눈 앞의 난제를 헤쳐나가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 주인공의 서사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다. 난제를 이겨내고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거미집'의 엔딩은 다소 떨떠름하지만, 어쨌든 김열은 영화를 완성했고 그는 신감독의 그늘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거미집'은 조금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데 1970년대가 배경인 영화에서는 이걸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마치 시대가 카타르시스를 허락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밀수'와 '거미집'이 시대권력에 대항 저항을 배제하고 눈앞의 난제를 이겨낸다는 지점은 카타르시스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부정한 권력(군부독재 세력)과 저항하는 군중(민주화 운동 세력)의 대립이 종말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돌이켜보면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은 벌써 4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반세기 전의 일에서 오늘날의 시대정신을 논하는 것은 진작부터 이치에 맞지 않았다. 

독재와 민주화 운동의 대립이 끝났다고 우리는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을까? 평화로운 시대라면 정직하고 정의로운 권력자가 국민의 머슴으로 충직하게 일하고 국민은 민주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세상일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런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의 시대정신과 작별해야 한다. 그 대신 현재의 과제에 걸맞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야 한다. 저성장 시대에서 비롯된 저출산과 인구 불균형, 계층 간 혐오 등 우리 시대의 난제는 과거의 그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는 진작에 과거의 시대정신과 작별해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과 작별하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서야 우리는 민주화 운동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시대정신과 작별할 수 있게 됐다. 

'밀수'와 '거미집'은 새로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인물들은 그들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에 정신이 없다. 이런 모습은 1970년대 그 이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보편적 개인의 모습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눈 앞의 난제를 헤쳐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르영화의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다. 두 영화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는 대신 1970년대에 작별인사를 고한다. '밀수'와 '거미집'은 마치 신해철의 노래처럼 70년대에 바치는 작별인사다. "무엇이 옳았었고, 무엇이 틀렸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신해철의 노랫말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다"고 답해도 될 것 같다. "모두 지난 후에는 누구나 말하기 쉽지만, 그때는 그렇게 쉽지는 않았지"라는 다음 가사는 오늘날에 요구되는 새로운 시대정신에게 보내는 걱정처럼 들린다. 저성장과 저출산, 기후변화 등 오늘날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답을 찾을 수 없다. 더 이상 과거는 우리에게 교과서가 되지 않는다. '밀수'와 '거미집'은 가장 어두웠던 1970년대로 향했지만, 현재에게 말을 건넨다.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오늘의 과제를 해결해 내일을 맞이했다고. 

2003년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고 했지만, 그것도 벌써 20년전이다. 그 시절 가장 뜨거웠던 젊은 감독들은 어느덧 한국영화를 이끄는 거장이 됐다. 더 이상 '씨네필'이라는 말도 무색해지는 2023년의 현재에 나는 두 번째 르네상스를 간절히 바란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뜨거운 영화감독들이 등장하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그 이야기에는 여전히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조롱이 담겨있을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또 다시 다가올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남길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는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