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는 1편에서도 개인적인 불만이 있었다. 이는 '다크나이트'의 조커와 비교하는데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불만이다. '다크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빌런'이었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히스 레저의 조커는 목적이 없는 악당이다. 요구하는 것도 없고 배경도 알 수 없다. 실제로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자신의 입가에 흉터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 매번 다르게 설명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왜 그러는지 이유도 모르는 빌런은 꽤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조커는 코믹스에서도 등장하지만, 배트맨의 이면(異面)과 같은 캐릭터다. 조커는 배트맨이 있어야 완전해지며 둘은 서로가 없다면 존재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토드 필립스의 영화 '조커'는 이들 모두를 부정해버린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조커는 왜 빌런이 됐고 혼돈의 아이콘이 됐는지 모두 설명하고 있다. 그 과정과 클라이맥스는 흥미진진하고 심연에 빠져들수록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는 세계 7대 불가사의를 풀어버린 것처럼 다소 맥이 빠진다. 조커라는 캐릭터는 끝까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남아주는 게 코믹스팬들의 바램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흥미진진했기에 '조커' 1편은 충분히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전편에 이어 조커(=아서 플렉)를 더 구석으로 몰아버린다. 1편에서 조커의 탄생배경은 모두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은 아서 플렉이 만들어낸 자아다. 조커와 아서 플렉은 완전히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변호인(캐서린 키너) 역시 이를 이용해 아서 플렉의 감형을 노리려고 한다. 그러나 할리 퀸젤(레이디 가가)과 관객들은 조커와 아서 플렉이 다르지 않다고 믿고 있다. 그들 모두는 조커가 아서 플렉을 지배하길 바라고 있다. 코믹스부터 팬들이 사랑한 빌런은 나약한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토드 필립스만은 조커를 부정해버린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악당 조커가 승리하는 결말을 바라지 않는 눈치다. 그는 교도관의 폭력에 굴복한 아서 플렉이 조커를 지우게 하면서 조커와 아서 플렉의 자아를 일치시켜버린다. 그리고 나약한 아서 플렉은 할리 퀸젤에게 버림받고 그에 걸맞는 결말을 맞이한다. '조커: 폴리 아 되'를 보고 분노한 관객들은 조커가 너무 나약해져서 크게 화가 났을 것이다. 감독은 '조커' 1편이 가져온 파장과 혼란을 두려워한 듯 하다. 실제로 '조커' 1편은 개봉 직후 모방범죄 우려 등으로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됐다. '조커: 폴리 아 되'에도 나오는 장면이지만, 조커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사회적 약자들로 자본계급주의 중심의 질서가 붕괴되길 바란다. 혼돈의 세상이 오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는 영화 '조커'가 만든 가장 큰 부작용이며 조커가 영화 바깥에서 혼란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의미다. '조커'는 2편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였다. 그럼에도 굳이 2편이 만들어진 이유는 1편이 가져온 영화 외적인 혼란을 스스로 끝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조커: 폴리 아 되'에 분노한 관객들은 "캐릭터의 역사가 그토록 오래됐는데 왜 이제와서 조커에 대해 우려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조커 캐릭터가 그 동안 논란이 없었던 이유는 배트맨과 함께 존재했기 때문이다. 빌런과 히어로는 적대적인 관계지만, 그만큼 상호보완적이라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조커' 1편은 조커를 견제할 캐릭터가 아무도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배트맨 없는 조커'는 그만큼 불완전하고 파장이 큰 캐릭터가 된다. 결국 '조커: 폴리 아 되'는 이 기획 자체가 실패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영화가 됐다.
빌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부터 '크루엘라', '베놈', '말리피센트' 등이다. 여기에 '양들의 침묵', '캐치미 이프유캔', '싸이코' 등도 악당이 주인공이다. 이들 영화는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빌런을 견제할 인물을 서브주인공 혹은 또 다른 빌런으로 내세웠거나 주인공 자체를 각색해 '조금 덜 나쁜 캐릭터'로 만들었다. 이는 악인 캐릭터의 사회적 파장을 줄이고 픽션을 픽션 안에 두도록 만든다. 실제로 영화 역사에서 손에 꼽는 악당인 한니발 렉터나 노먼 베이츠를 두고 '조커'처럼 그 심연을 파고든다면 그 파장은 '조커' 이상이 될 수 있다(이들 캐릭터의 과거를 다룬 프리퀄 작품은 존재하지만, 악한 본성을 깊게 파고들지는 못한다). 실제 연쇄살인범이나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픽션 영화에서도 견제장치를 마련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큰 견제장치는 '실제 인물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가'이다. 미국 공포영화의 단골손님인 에드 게인이나 테드 번디, 헨리 리 루카스는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인프레임의 공포영화는 악인의 내면을 파고들지 않는다. 공포영화의 목적은 '공포'에 있다. 이는 혼란의 카타르시스를 준 '조커'와 다르다.
'조커: 폴리 아 되'는 DC코믹스의 조커 캐릭터, 전편 '조커'를 지우고 본다면 꽤 재미있는 이야기다. 5명을 죽이고 정신병원에 갇힌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지만, 결국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는 결말을 맞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편의 업보와 캐릭터의 역사를 짊어지고 있다. '조커' 시리즈는 결국 '잘 만든 실패작'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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