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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운명론 - '플래시' vs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 이후 '멀티버스'라는 개념이 꽤 일반적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이 개념을 차용하면서 가끔 '멀티버스'라는 개념은 과학의 영역을 넘어 어딘가에 실존하는 개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멀티버스는 시간의 영역에서 인식된다. MCU식 표현을 빌리자면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쓰여진다(사실 이런 개념은 '백투더퓨쳐2'에서 먼저 등장했다). 그러니깐 "오늘 나는 커피를 마신다"라는 선택을 한 유니버스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를 선택한 유니버스가 따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커피에 대해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많은 이야기들이 인과론에 따라 다르게 쓰여진다. 하나의 선택이 원인이 돼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다른 결과들은 각기 다른 유니..

콘텐츠/리뷰 2023.06.28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 위대한 영화음악가의 '서사'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좋아한다. 촌스러운 서부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르영화로서 짜임새는 영화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다. 그저 잘 만들어서, 재미있어서 좋아하는 영화지만, 이 영화를 볼 때면 나는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나는 딱히 서부영화에 추억이 있는 나이도 아니고 영화 자체가 서정적인 서사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서부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울컥한다. 열정적인 씨네필이던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기에도 적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향한 열정이 불타던 시절에는 오히려 공포영화나 형사버디무비를 더 좋아했다. 50년도 더 된 서부영화를 보고 울컥하는 것은 적절한 지점이 존재하지 않고는 납득하기 ..

콘텐츠/리뷰 2023.05.30

행복하지 않다면 출산율은 오를 수 없다

나는 연애를 하고 있지만, 결혼 적령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 즉 출산율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가"를 이야기하려면 그냥 내 이야기만 풀어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보편적 화두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하나의 텍스트를 가져오려고 한다. 그것은 마이클 무어의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다. 2015년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을 때도 "출산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안지가 되겠군"이라고 생각했다. 2015년에는 앞으로 8년 뒤에 출산율 대재앙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8년 뒤의 세상이 이렇게 퇴화할 줄도 몰랐다. '다음 침공은 어디?'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는 개봉 후 8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더 절실하게 다가온..

정치&시사 2023.03.23

극장의 생존전략에서 시작된 한국영화의 몰락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살펴보면 "돈 벌었다"라고 말할만한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 1월 개봉작 중 대작이었던 '유령'과 '교섭'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데 실패했다. '카운트'도 개봉 후 2주 동안 36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비교적 저조한 수준이다. 3월 1일 개봉한 '대외비'는 5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선방하고 있지만, 출연 배우의 면면을 살펴보면 폭발적인 흥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날 개봉한 '멍뭉이'는 좋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강아지까지 등장하지만, 11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정리하자면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교섭'뿐이다(172만명). 그러나 이마저도 손익분기점인 300만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3월 15일 개봉하는 '소울메이트'나 ..

콘텐츠/기획 2023.03.08

[스포주의] '바빌론' - 무성영화의 퇴장을 보며 극장영화의 퇴장을 걱정하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화려했던 영화의 에필로그는 쓸쓸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막을 내린다. 붉은 빛과 푸른 빛이 뒤엉킨 L.A의 석양처럼 찰나의 순간은 지나가고 음악은 끝이 난다. 그와 함께 아름다웠던 남녀의 성공기도 끝나고 관객들은 극장을 나선다.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영화보기 자체를 사소한 허상처럼 만들어버린다. 마지막 장면 속 남녀의 엇갈림과 별개로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엇갈렸기 때문에 그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공허한 감정은 긴 여운을 남긴다. 극장 밖으로 나섰을 때 인상적이었던 몇 개의 장면과 음악은 휘발되고 공허한 감정만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더 오래 기억되는 방법이다. ..

콘텐츠/리뷰 2023.02.06

낭만의 시대를 향한 그리움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디지털의 시대에 20세기를 추억했기 때문이다. 20세기를 살아본 입장에서 내가 기억하는 20세기는 썩 낭만이 있었다. 홍콩할매 같은 시덥잖은 괴담이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휴거 같은 것들을 믿었다. 2000년이 다가오기 전에는 'Y2K' 괴담이 등장했고 기업들이 나서서 이를 걱정할 정도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거꾸로 들으면 악마를 숭배하는 메시지가 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도 믿었다(이 이야기는 MBC '뉴스데스크'에도 나왔다). 지나고 나니 20세기의 사람들은 꽤 순박했던 모양이다. 순박함이 낭만을 대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순박함은 조금의 불편함에서 온다. 정보를 습득하는데 조금은 불편했기에 사람들은 상상으로 정보의 부재를 채웠고 그것은 괴..

콘텐츠/기획 2023.01.10

[스포/뇌피셜 주의]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 이 글은 전적으로 '뇌피셜'에 의존한 것으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저 재미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반박시 님 말이 다 맞습니다. '더 글로리'가 파트1과 파트2로 나눠지는 것은 같은 이야기지만, 결이 달라지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파트1 8화의 마지막에서 충분히 암시됐다. 하도영(정성일)은 박연진(임지연)과 문동은(송혜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걸 암시했고 주여정(이도현)은 본격적으로 동은을 위해 칼춤을 출 예정이다. 이에 따라 파트2에서는 파트1과 몇 가지 지점이 달라질 전망이다. 1. 경란(안소요)의 등장 - 동은(정지소)이 학교를 자퇴하면서 연진의 일당들은 경란을 새로운 타겟으로 삼게 된다. 경란은 현재에서도 재준의 옷가게에서 일하며, 연진의 짐을 들어주며 오랜 기간 폭..

콘텐츠/의견 2023.01.09

[스포주의] '아바타: 물의 길' - 영화 깎는 노인의 '장인정신'

'아바타' 1편이 개봉하고 13년이 흘렀다. 그 사이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는 '아이언맨'의 성공 이후 '인피니티 사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으며 할리우드의 대표 프렌차이즈가 됐다. 그 사이 중국은 거대 자본을 쏟아부어 할리우드를 견제할 자신들만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그러나 이것은 그저 그런 선전·선동영화로 자국 내에서만 대접받는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산업의 주류는 극장에서 OTT로 이동할 뻔 했다. 몇 가지 영화들은 극장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보여줬지만, 여전히 자본과 인프라가 OTT 드라마로 향하고 있는 건 부정하기 어려웠다. '아바타' 1편이 개봉한 후 2022년 2편 '아바타: 물의 길'이 개봉하기까지 13년 동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아무런 작품도 내지 않았다. 그는 그저 ..

콘텐츠/리뷰 2022.12.14

어쩐지 2023년에 잘 될 거 같은 배우

강해림 올해의 말미를 화려하게 장식한 신인이다. 넷플릭스 '썸바디'에서 과감한 연기를 보여준 이 배우는 사실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작품의 무드 자체가 워낙 독특했고 '김섬'이라는 캐릭터도 독특했다. 독특한 캐릭터를 낯선 배우가 연기하니 작품 자체가 새로운 세계와 같았다. 그러다 몇 번 검색해보고...'연애의 참견'에서 재연배우로 활동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놀랬다. 다름이 아니라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이 미모를 '썸바디'에서 그렇게 너프시켜서 작품에 녹아들게 한 정지우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작품을 위해 미모를 감추고 김섬의 독특한 딕션을 소화한 강해림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김수연 '썸바디'에서 김섬과 영기은의 관계는 '다크 유니버스 속 우영우와 동그라미'를 연상시킨다. 영기은..

콘텐츠/기획 2022.11.22

불닭국밥의 '2022 사사로운 영화리스트'

'어나더 라운드' - 술과 춤이 어우러진 굿판이 벌어진다. 마치 한많은 세상 취해서 춤이나 추자며 놀아대는 이 아저씨는 의외로 북유럽 사람이다. 한국인의 정서인 것처럼 느껴졌던 한(恨)과 흥(興)이 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사람에게서도 느껴진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가. 술 때문에 꼬여버린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술 자체, 혹은 술을 마시려는 의지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술에서 흥을 찾는 그 정서를 바라보고 위로한다. 술이 무슨 잘못인가. 술을 마시고 주체하지 못한 감정이 잘못이고 그 감정을 이끌어 낸 주변을 원망하다보면 결국 원인은 본인에게로 돌아온다. '어나더 라운드'는 술 땡기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술 마시고 사고는 치지 말자. 한 많은 흥을 ..

콘텐츠/기획 2022.11.22